과학

아카시아 나무에선 게으른 개미가 더 배불리 먹는다

해암도 2021. 7. 31. 08:19

[사이언스카페]

아카시아 잎에 있는 공생 개미들. 흰색 돌기는 식물이 개미에게 보상으로 주는 벨트체로 단백질이 풍부하다./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이솝 우화를 보면 뜨거운 여름에도 열심히 일한 개미는 추운 겨울에 식량이 가득한 집에서 편히 지내고, 덥다고 그늘에서 빈둥대던 베짱이는 나중에 추위에 떨며 구걸을 한다. 현실은 사정이 다르다. 개미는 게으른 쪽이 부지런한 동료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파나마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의 사브리나 아마도르-바르가스 박사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자연의 과학’에 “아카시아 나무는 공생(共生)하는 개미 중 게으른 종(種)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한다”고 밝혔다.

아카시아는 개미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벨트체와 당분이 많은 수액을 먹이로 주고 속이 빈 가시에 살 수 있게 해준다. 대신 개미는 아카시아 나뭇잎을 먹는 초식동물을 쫓아 버린다. 몸에서 항생물질을 분비해 질병을 막고 기생 식물도 없앤다.

연구진은 중앙아메리카에 사는 아카시아(학명 Vachellia collinsii)가 공생하는 개미의 종에 따라 보상을 달리 하는지 조사했다. 슈도미르멕스 스피니콜라(Pseudomyrmex spinicola) 종 개미는 교과서대로 공생 관계에 충실하지만, 크레마토가스테르 크리노사(Crematogaster crinosa) 종 개미는 아카시아에 기대 살면서도 초식동물을 제대로 쫓아내지 못하고 몸에서 항생물질도 내지 않는다.

아카시아는 초식동물과 해충을 쫓아주는 공생 개미에게 다양한 보상을 제공한다. 먼저 속이 빈 가시를 집으로 제공하고(a), 당분이 많은 수액(b)과 단백질이 풍부한 벨트체(c)도 준다./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이솝 우화라면 아카시아를 열심히 도운 스피니콜라 개미가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연구진이 3개월 관찰한 결과 현실은 달랐다.

아카시아는 공생 개미가 없어도 속이 빈 가시를 만들었지만, 보상으로 주는 음식은 달랐다. 공생 개미가 있는 아카시아가 수액을 75% 더 분비했다. 놀랍게도 이 수액은 게으른 개미에게 더 많이 돌아갔다.

충실한 스피니콜라 개미가 있는 아카시아는 나뭇잎 아래쪽에서만 수액을 분비했지만, 게으른 크리노사 개미가 있으면 나뭇잎 끝부분에서도 추가로 수액을 분비했다. 게으른 개미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셈이다.

연구진은 아카시아가 게으른 개미가 좋아서 수액을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일을 더 시키려는 ‘궁여지책(窮餘之策)’이라고 설명했다. 게으른 크리노사 개미가 나뭇잎 끝에서 나오는 수액을 먹으려고 잎 사이를 이동하다보면 그전에 마주치지 못한 해충을 만나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로 치면 세금을 받는 경찰에게 뇌물까지 주며 도둑을 쫓아달라고 간청하는 셈이다. 이솝이 이 아카시아를 알았더라면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ywlee@chosun.com  기사입력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