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에 “포르노 감상문 써와라”... 뉴욕 명문교 성교육에 발칵
달튼 스쿨, 컬럼비아 그래머 스쿨의 성교육 강사 사직
“어린이들 이미 인터넷서 성인물에 노출, 옛날식 성교육 안돼” 반론도
뉴욕 맨해튼의 명문 사립학교 '달튼스쿨'의 성교육 전문 교사 저스틴 앙 폰테가 만 6세 1학년 짜리들에게 보여줬다는 성교육 만화의 한 장면. 남자 어린이가 '성기를 만지면 기분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 '분노한 학부모' 유튜브 계정
미국 뉴욕시의 유명 사립학교에서 적나라한 성교육 수업에 분노한 학부모들 때문에 담당 교사가 사직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선 이미 어린이·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터넷 컨텐츠가 범람하고 성폭력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성교육을 고수해야 하는지, 수위가 높더라도 현실에 맞는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뉴욕 부촌 맨해튼 어퍼이스트의 명문 사립 초등학교인 달튼 스쿨. 연 학비가 한화 6000만원이 넘는다. /페이스북
뉴욕 맨해튼의 부촌 어퍼 이스트의 ‘달튼 스쿨’ 학부모들은 지난6월 저스틴 앙 폰테라는 보건 교육 담당 교사의 1학년 대상 성교육을 두고 발칵 뒤집혔다. 초등학교인 달튼 스쿨은 설립 100년이 넘은 학교로, 연간 학비만 5만5000달러(6300만원)에 달한다.
폰테는 필리핀계 30대 여성으로, 교육학과 공중보건 석사 학위를 가졌으며 어린이·청소년 성교육 전문 컨텐츠를 만들고 달튼 스쿨을 비롯한 뉴욕 일대 명문 학교에 출강하는 사람이다.
뉴욕 달튼스쿨의 성교육 전문 교사 저스틴 앙 폰테. 필리핀계 이민 2세로 알려졌다. 폰테는 성교육 내용을 접한 학부모들이 온라인에서 신상 털기로 공격하며 학교 측에 그의 해임을 요구해 견디지 못하고 사임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학부모들이 문제 삼은 폰테의 성교육 수업은 만 6세인 1학년생들에게 남녀의 자위 행위를 담은 만화 영화를 보여주고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친 부분이다.
만화 속 남자 어린이는 “가끔 내 성기가 커져서 하늘을 가리켜요” “가끔 성기를 만지면 기분이 좋아져요”라고 하고, 여자 어린이는 “나도 목욕탕에 있을 때나 엄마가 침대에 눕혀줬을 때 성기 만지는 게 좋아요”라고 한다. 어른 캐릭터는 “그래, 기분 좋지? 하지만 이런 행위는 혼자 있을 때만 해야 해. 형·누나들이나 어른들은 공개된 장소가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만 한단다”라고 가르친다.
폰테가 달튼 스쿨 1학년생들에게 보여준 성교육 만화. 여자 어린이가 '침대에 누울 때 성기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 만화는 민간의 성교육 교사 단체들이 개발한 교재로 알려졌지만 달튼 스쿨 학부모들은 "6세 아이들에게 자위를 하라고 부추겨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 '분노한 학부모들' 유튜브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폰테는 또 줌 수업 등에서 “누구도 너희들 몸을 허락 없이 만져선 안 돼. 조부모나 부모도 너희 몸에 손을 대려면 꼭 허락을 받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학부모들은 “부모까지 잠재적 성범죄자로 모는 것이냐” “당신은 이런 수업을 여섯 살짜리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부모들에게 허락 받았냐”며 분노했다. 폰테는 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온라인으로 엄청난 신상털이를 당했고, 학교와 이사회를 통해 해임 요구가 빗발쳤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폰테가 맨해튼의 또다른 명문 중·고교인 ‘컬럼비아 그래머 앤 프래퍼러토리 스쿨’에서 16~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포르노 독해력(literacy)’ 줌수업도 문제가 됐다. 1764년에 설립된 이 학교 역시 연 학비가 5만달러 이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들 배런, 억만장자 투자자 빌 애커맨의 자녀 등이 다닌 곳으로 유명하다.
뉴욕 맨해튼의 명문 사립 중고교인 '컬럼비아 그래머 앤 프래퍼러토리 스쿨' 전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아들 배런도 다닌 학교다. 폰테 교사는 이 학교 출강에선 고교 1~2학년을 대상으로 '포르노 독해력' 수업을 했다.
이 ‘포르노 수업’에서 폰테는 포르노 영화에 잘 나오는 은어 등을 자세히 가르쳤으며,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포르노를 보고 감상문을 적어오게 하고, 근친상간 역할극을 유도하거나 포르노 사진 공유 사이트 ‘온리팬스’를 소개하는 수업도 했다고 부모들은 주장했다. 폰테는 ‘성별과 성적 지향별 오르가슴 경험 통계표’를 보여주면서 ‘여성 이성애자’가 남성 이성애자나 남성 동성애자, 여성 동성애자 등보다 떨어진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뉴욕 컬럼비아 그래머 앤 프래퍼러토리 스쿨에서 실시된 '포르노 리터러시' 수업에서 자료로 활용된 슬라이드의 일부. 폰테 교사는 포르노 영화 감상문 숙제와 근친상간 역할극 등을 숙제로 내줬다고 학부모들은 주장했다. /페이스북
그래머 스쿨의 학부모들은 “폰테가 아동 성애자 아닌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학생들에게 주입했다” “포르노를 통한 성교육은 부적절하다”고 비난했지만, 폰테는 “이미 학생들은 부모나 교사의 눈을 피해 포르노를 보면서 비현실적인 성적 관념을 갖고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과장된 것인지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맞섰다.
폰테 교사가 뉴욕 명문 고교 '컬럼비아 그래머 앤 프래퍼러토리 스쿨'에서 실시한 '포르노 리터러시' 수업에서, 성별과 성적 지향별로 성관계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조사한 통계치로 제시한 자료. '이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남성이나 남녀 동성애자, 양성애자들보다 성적 만족을 덜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다. / '분노한 학부모들' 유튜브
NYT는 많은 성교육 전문가와 학자들은 ‘폰테의 수업 내용 자체는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예컨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5~8세 어린이에게 성기 등 신체 부위의 형태와 기능에 대해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돼있고, 미 연방정부 성교육 가이드라인에도 청소년들이 성관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지 않고 정확한 피임 방법을 숙지하도록 가르치게 돼있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의 한 성교육 강사는 NYT 인터뷰에서 “TV와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를 통해 이미 왜곡되고 자극적인 성적 컨텐츠는 넘쳐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자신의 가치를 알고 스스로를 지키며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폰테를 옹호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 입력 202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