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無彩色 옷 만드는디자이너 박춘무

해암도 2013. 6. 5. 06:45

 

소매는 왜 여기?… 난 질문을 디자인한다

-"내 옷은 실험과 집념"
가난한 유년, 무채색에 몰입
20대 때 머리 짧게 자르고 매일 옷시장 돌며 돈 벌어 내 이름 건 패션 회사 차렸지

-뉴욕을 흔든 '박춘무 스타일'
공기처럼 투명하고 얇은 옷, 수묵화처럼 線이 드러난 옷
컬렉션마다 독창성 호평받아… 해외 언론 "어디서도 못 본 옷"
패션 디자이너 박춘무(朴春茂·59)는 "남을 따라 하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머리칼은 늘 가위로 마구 자른 것처럼 듬성듬성 층이 져 있다. 펑크(punk)족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다.

1988년에 데뷔해 지난 25년 동안 여성복을 만들었지만 그의 옷엔 리본·레이스·주름 장식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 흑백(黑白)이다.

1999년 미국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단독 매장을 냈고, 2010년부터 봄·가을 쉬지 않고 7차례 뉴욕 컬렉션 무대에 섰다. 대중이 보기엔 어쩐지 낯설고 어려운 옷, 하지만 외국 언론과 바이어들 사이에선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옷'이라는 평을 듣는 게 박춘무의 옷이다.

박춘무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보면 이게 다 가슴속 우물에 물 좀 부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몸통의 반만 셔츠인 저지 원피스. 그 옆에 패션 디자이너 박춘무가 섰다.
몸통의 반만 셔츠인 저지 원피스. 그 옆에 패션 디자이너 박춘무가 섰다. 그가 걸친 옷도 셔츠인지 재킷인지 카디건인지 알 수 없다. 구분은 어차피 무의미하다. 박춘무는“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옷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허영한 기자
청춘, 무채색에 천착하다

어린 시절 박춘무의 집은 의류 공장 근처였다. 부모님은 아동복을 만들어 팔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선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떼어다 명동 소매점에서 파는 일을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박춘무는 "먹고살 걱정이 제일 컸던 시절"이라며 웃었다.

"그땐 세상이 그저 회색빛으로 보였던 것 같다.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고, 검은 옷이나 군복 같은 카키색 옷만 입고 다녔다. 내 지독한 무채색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됐을 거다."

희한하게 똑같은 옷도 박춘무의 손을 거쳐 옷걸이에 걸리면 더 잘 팔렸다. 돈이 금세 모였다. 가게만 세 군데로 늘어났다. 그런데 정작 박춘무는 "이 무렵부터 외롭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문득 이게 다 뭔가, 이렇게 돈 벌면 뭐하나 싶어졌다."

1981년에 결혼했고, 같은 해 홍익공업전문대학 도안과에 들어갔다. 종일 물감을 비벼 그림을 그리다 생각했다. '그래, 이젠 내 옷을 만들자.' 사업을 다 접고 새 패션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이름은 '데무(DEMOO)'였다. 자신의 이름 끝 자에 '~부터'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드(de)'를 붙였다. '모든 패션은 박춘무에서 시작된다'는 당찬 각오였다.


	왼쪽부터 2012년 봄·여름, 2013 가을·겨울 뉴욕 컬렉션.
왼쪽부터 2012년 봄·여름, 2013 가을·겨울 뉴욕 컬렉션. /데무 제공
질문하는 옷을 만들다

박춘무의 옷은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셔츠도 아니고 원피스도 아니다. 재킷도, 조끼(베스트)도 아니다. 셔츠와 원피스가 결합한 '셔피스', 재킷과 조끼가 한데 녹아든 '재스트'…. 신조어(新造語)를 동원하면 비로소 설명이 조금 쉬워지는 듯하지만 그마저도 막상 사람이 입고 움직이면 또 그 형태가 달라진다.

박춘무는 "기왕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정말 다른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내 옷은 질문이다. 왜 소매가 굳이 여기 달렸는지, 왜 재킷은 다 비슷한 모양인지 묻는 거다. 옷의 형태를 끊임없이 뒤집어보고 바꿔보는 거다. 남들도 다 만드는 뻔한 옷은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1999년 프랑스 파리 컬렉션 무대에선 한 장의 천이 몸에 휘감기는 것만으로도 구조적인 코트가 되고, 스커트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패션쇼를 열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뉴욕 컬렉션은 매시즌 그야말로 실험이다. '공기'를 주제로 가장 투명하고 얇은 옷을 보여주는 컬렉션을 열었고, 한복의 동정이나 깃에서 영감을 얻은 구조적인 옷을 보여주기도 했다.

올해 2월엔 수묵 담채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구름과 안개, 눈 덮인 산허리, 묵직한 얼음 그림자는 때론 솜을 넣은 패딩으로, 느슨한 치마로, 가죽 재킷으로 구현됐다. 컬렉션이 끝나고 '우먼스웨어데일리(WWD)' 등은 "박춘무 특유의 철학과 스타일을 확실히 보여줬다"고 평했다.

박춘무는 싱긋 웃으며 "오늘도 난 주머니와 허리끈, 옷깃과 선 하나까지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다"고 했다. "한때 내 옷은 실험이고 때론 집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월에 아직도 무뎌지지 않은 나란 사람 그 자체다."

                                                                 송혜진 기자 조선 : 201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