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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병원에서 약을 지어 내내 먹어도 낫지를 않아요. 선생님, 약 좀 세게 지어주세요.”
감기 증상이 여러 날 계속 되는 아이를 데리고 오신 할머니의 요청입니다. 약을 세게 쓰면 병이 빨리 나을까요?
대부분의 감기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염병입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를 없애는 항바이러스제 약은 현재까지 개발된 것이 몇 가지 안 됩니다. 대부분의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치료제가 없습니다.
‘아니 치료약이 없다구요?’, ‘이제껏 아이들이 감기 걸렸을 때 병원가면 약을 처방해주던데 그럼 그 약은 뭐에요?’ 라고 반문하실 겁니다. 감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감기 증상 그 자체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나서 힘들어 하고, 또 열이라도 나면 아이들은 더 힘들어 하죠. 많이 보채기도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다가 먹이고 나면 아이들 증상이 좀 좋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기도 합니다. 이걸 보고 대부분의 엄마 아빠들은 아이 병이 좀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감기 증상에 대해 사용하는 약제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증상을 좀 누그러뜨리는 약제들입니다. 즉, 콧물이 좀 덜 나오게 하는 약, 코가 좀 덜막히게 하는 약, 기침을 덜하게 하는 약, 가래가 묽어지게 하는 약, 열이 떨어지게 하는 약 등 아이들의 여러 가지 감기 증상을 약하게 해주는 약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약제들을 먹이고 나면 아이들의 감기 증상이 좀 덜해지면서 아이들의 기분도 나아지고, 식사량이나 활동성도 좋아져서 아이들이 감기를 이겨내는 걸 도와주는 간접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어떤 아이들은 감기약을 먹여도 감기가 안 떨어질까요? 감기라는 바이러스 감염도 아이가 아이 자신의 면역력으로 극복하여야만 회복하게 됩니다. 증상을 약화시키는 약만으로는 병 자체가 낫는 건 아니니까요. 즉,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아이들과 감기 바이러스 간의 전쟁을 치르고 난 후에야 감기 증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감기 초기에 병원 약을 얼른 지어 먹여서 감기가 뚝 끊어지게 해야지’ 라는 어른들의 생각이 때로는 아이들이 약 먹는 기간만 더 길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기 증상은 쓸 약도 없으니 그냥 두고 보자는 식은 곤란합니다. ‘애들은 원래 아프고 그러면서 크는 거야’ 라고 관심을 끊어버리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감기를 앓고 지나가는 동안 이차적으로 다른 문제가 겹쳐지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이염이나 기관지염이지요. 아이들이 감기를 앓는 동안 귀에 염증이 퍼지는 중이염이 생기면 고열이 나고 아이들이 귀를 아파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 감기가 심해지면서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이어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침이 더욱 심해지고 때로는 호흡이 거칠고 가빠지기도 합니다.
감기에 걸린 아이들에게 초기에 약을 빨리 먹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내 온도나 습도를 적절하게 맞추어 주고, 충분한 수분 섭취를 도와주면서 아이들이 감기를 잘 이겨내는지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하여야 합니다.
기침이나 열이 더 심해지는 경우에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문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럴 땐 빨리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감기 걸린 아이들이 편하게 병을 잘 이겨내게 하는 비결은 바로 엄마 아빠의 세심한 관찰이지요.
2013. 0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