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근골격계 질환 분야 -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이강우 원장

해암도 2014. 11. 10. 06:38

"약물·주사·운동요법만으로도 환자 90% 거뜬히 완치"


이강우 원장이 요통환자에게 슬링을 이용한 허리근육 이완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이 원장은 “근골격계 환자의 80~90%는 수술 않고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신동연 객원기자


명의(名醫). 사전적 의미로 ‘병을 잘 고쳐 이름난 의사’를 말한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명의의 존재는 이로써 충분하다. 하지만 환자가 진정 기대하는 의미는 이보다 폭이 넓다.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인 부담까지 고려할 줄 아는 의사. 최소한의 치료로도 최대의 결과를 얻어내는 의사.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에 발벗고 나서는 의사에게 비로소 ‘명의’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이강우(재활의학과) 원장이 걸어온 길이 그렇다. 그의 이력은 누구보다 화려하지만 그의 의술은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강우 원장의 진료실. 민수영(43·여·가명)씨가 왼쪽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4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심했다가 나아지길 반복하는 통증 때문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충격파치료나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사는 당장 수술을 권했다. 해당 병원에서 찍었던 MRI(자기공명영상촬영)에서 석회화된 모습이 크게 발견됐다. 석회화는 손상된 조직에 혈액과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칼슘이 축적된 현상을 말한다. 이 원장이 면밀하게 진찰한 결과, 통증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늘어난 인대와 염증이 주범이었던 것이다. 그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과 자가운동치료를 처방했다. 환자는 몇 주 만에 고질적인 통증에서 벗어났다.

정확한 진찰이 좋은 치료의 초석

이 원장의 진료는 이런 식이다. 많은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 원장을 찾는다. 환자의 십중팔구는 ‘수술할 필요 없다’는 답변을 듣고 돌아간다. 약물·주사·운동 등 보전적 치료로 웬만한 환자는 완쾌한다. 그렇다고 수술을 아예 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환자만 수술한다. 수술이 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순 있지만 환자에게 신체적·경제적 부담이 돼서다. 보전적 치료가 그의 치료 철학이다.

 재활의학은 이런 면에서 그의 평생 ‘반려자’다. 이 원장은 진찰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좋은 치료 결과는 정확한 진찰에서 나온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단은 의료기기에 의존한다. 하지만 진단기기가 오류를 낳기도 한다. 민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이 원장은 “MRI 등 진단 영상에만 의존하면 문제를 엉뚱한 데서 찾을 수 있다”며 “그것을 잘 가려내는 능력이 좋은 의사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수술 건수 줄이자” 의사들에게 적극 권유

이 원장은 재활의학, 특히 근골격계 분야의 대가다. 그는 근골격계 질환의 80~90%는 수술 없이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어깨질환은 수술하는 질환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지금도 최소 수술 원칙을 고수한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재직 시절 일화에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당시 이 원장은 근골격계 질환 환자를 많이 봤다. 미국의 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그의 눈에는 수술이 너무 많았다. 미국 보험회사는 수술 전 적어도 6~8주 동안 보전적 치료를 받았던 환자에 한해 수술비를 지급한다. 그는 의대 후배였던 신경외과·정형외과 교수에게 꼭 필요한 수술만 하라고 주문했다. 디스크·어깨 등 수술 대상 환자는 딱 3주만 재활의학과로 돌릴 것을 제안했다. “수술은 3주간 입원한 다음에 해도 된다” “수술을 한 달에 한 번 하든, 백 번 하든 월급은 똑같지 않느냐”는 말로 설득했다. 삼성서울병원에 진료·수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던 시절이었다.

 6개월 동안 수술 권유를 받고 전과된 100명의 환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수술을 받은 환자가 확 줄었다. 100명 중 실제 수술을 받은 환자는 1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보전적 치료를 받고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그후 신경외과·정형외과 교수의 ‘수술관’이 바뀌었고, 이 원장이 수술을 권한 환자만 수술을 하게 됐다.

봉사정신까지 전수하는 의사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에서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재활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땄다. 우리나라에는 재활의학과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한국 재활의학과 1세대 중 거의 유일한 재활의학과 전문의였던 셈이다. 당시 정형외과 전문의를 주축으로 재활의학과가 만들어졌던 시기다. 전공의 수련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대 병원에서는 10년간 재활의학과 교수와 수련부장을 지냈다. 지금도 그는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대한재활의학회 회장·이사장을 역임했고, 특히 삼성서울병원 개원 멤버이자 삼성 이건희 회장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이력은 바로 봉사다. 그는 ‘노숙자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5년 삼성서울병원 재직 시 자전거 사고로 찾아왔던 이탈리아 출신 보르도 빈첸시오(한국명 김하종) 신부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빈첸시오 신부는 성남의 노숙자 급식 시설인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원장은 노숙자들이 의료혜택을 못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의료봉사를 제안했다. 간호사·전공의·물리치료사·사무원을 데리고 주 2회씩 봉사를 나갔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는 무료로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전공의 수련 과정의 의무항목으로 넣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의사협회로부터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이 원장은 “의사는 사회에 봉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며 “후배 의사에게 의술만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마음까지 전수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 내려온 지금도 간간이 안나의 집을 찾곤 한다. 20년 가까이 봉사의 손길을 이어가고 있다.

류장훈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