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방지 기술 연구중… 맨 먼저 아내에게 선물할 겁니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의사인 아내도 정신이 완전히 나간 상태에서 나를 병원으로 옮겼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이 찌릿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심장이 좋지 않으니 스텐트(심혈관이 막혔을 때 넣는 기구)를 삽입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의 시절 혈관외과에서 파견근무할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삽입한 지 1년여가 지난 뒤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스텐트를 보면서 막혔던 혈관과 똑같이 여기저기 엉겨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스텐트를 넣어도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내 심장에 스텐트를 넣으라고?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스텐트를 넣지 않고 심장을 보호할 방법이 뭔지를….
성형외과 전문의 이희영 박사(47)가 ‘발명왕 의사’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1999년 초 지나친 흡연과 과음으로 심근경색이 찾아왔을 때 그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특허 출원만 200개 이상 한 의사가 됐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았다.
당시 가톨릭의대 은사 중에서 지방의 효용성을 연구하던 분이 있었다. ‘지방이 우리 몸에 해로운 것보단 이득이 되는 게 많다’는 그 은사의 주장에 주의를 기울였다. 당시 지방을 분리해 동물에게 투여하는 시술은 많이 있었다. 동물의 몸에서 뺀 지방을 다시 그 동물에게 투여하는 시술이었다. 부작용도 없었고 효과도 좋았다.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한창일 때였다.
해외 사례 등을 찾아보면서 ‘내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넣으면 되겠네’ 하면서 지방 줄기세포를 연구했다.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정맥주사로 놓았더니 심장이 좋아졌다. 지금은 당시보다 담배와 술을 2배 이상으로 많이 하는데 심장은 멀쩡하다. 지방은 혈관을 늘리고 증식시키는 효과를 준다. 어떤 상처든 지방을 넣어주면 회복능력이 훨씬 좋아진단다. 그때부터 ‘지방 마니아’가 됐다.
의대에 입학한 이 박사는 뭘 전공할까 고민하다 성형외과를 택했다.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지만 예술적 감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분야가 성형이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고치면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의 취미는 ‘만들기’. 평소 기계란 기계는 다 뜯어보고 그 원리를 분석했다. 궁금하면 뭐든 ‘열어보면 되지’라는 게 그의 철학. 그의 사무실에는 망치와 드라이버 등 의사라기보다는 공장의 공원을 연상할 정도로 다양한 공구들이 넘쳐난다. 대학 다닐 땐 자동차에 빠졌었다. 세계 최고의 엔진을 만들어보겠다며 고향인 군산에 공장용지를 사 자동차 엔진을 여러 개 해체해 놓고 연구를 했었다. 이 박사에게 세상은 연구할 것들을 계속 만들어 줬다.
지방을 투입하면서 심장이 좋아지자 ‘내가 사람들에게 뭘 만들어 주면 더 편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1년 메디칸이라는 의료기기 제조 회사를 차린 배경이다. 턱 깎는 수술로 사람들이 죽는 사례가 발생하는 걸 보면서 ‘최소침습 안면 윤곽기’라는 턱 깎는 기계를 만들었다.
“예뻐지려다가 죽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알아봤더니 너무 날카로운 것으로 턱을 깎고 있었어요. 그래서 신경을 잘못 건들면서 사망사고까지 났습니다. 날카롭진 않으면서도 사포처럼 부드럽게 비벼서 깎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깎은 것을 어떻게 신체 밖으로 내보내느냐였죠. 그걸 연구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이 박사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지방 이식기를 만들었다. 지방을 분리해 다시 넣는 과정을 간단하게 한 기계다. 가슴에는 지방 이식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방을 분리해 세포를 가늘게 분쇄해 넣으니 효과가 좋았다. 얼굴 성형의 경우 지방 세포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이용하는 사례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 박사는 세밀하게 분쇄한 지방을 가슴 및 얼굴에 넣는 시술로 한국의 성형 지도를 바꿨다.
2009년엔 서울 강서구청에 ‘지방을 의료 폐기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을 했다. 체내에서 분리한 지방은 바이러스 등 감염 위험이 있는데 의료 폐기물이란 명문화가 되지 않아 그냥 하구수로 버려지는 일이 잦았다. 하수구가 막히는 사례도 많았다. 성형외과 의사들에겐 고민거리였다. 이 박사는 지방을 그냥 버리는 대신 활용하면 어떨까란 고민을 하다 지방에서 기름을 제거하고 남은 조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소재를 만들었다. 지방조직 활용으로 ‘원천 특허’를 받았고 2011년엔 40억 원짜리 서울시 전략과제인 ‘지방줄기세포 자동 분리 및 배양 장치’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다.
이 박사는 눈매 교정이란 ‘신천지’도 열었다. 눈을 예쁘게 하려면 쌍꺼풀 수술밖에 없었는데 눈 모양을 잘 잡아주는 눈매 교정 기술을 개발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수술이냐”며 성형외과 의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일반화된 시술이 됐다. 서바이벌 게임 때 쓰는 총도 만들었고 최근엔 기존 안경과 전혀 다른 3차원(3D) 안경을 발명해 특허 출원을 해놓은 상태다.
지금까지 연구에 들어간 돈만 100억 원이 넘는다. 성형외과 의사인 아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성형외과 의사이면서 발명에만 매달리는 남편이 야속했지만 묵묵히 지켜봤다. 돈은 많이 썼지만 발명에 재미 붙인 남편이 싫지는 않았다.
메디칸의 연 매출은 60억 원이다. 그러나 돈을 벌지는 못했다. 연구비가 더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돈을 벌 일이 많이 생기고 있다. 지방 세포를 분리해 분쇄하는 기계에 대한 수요가 여기저기서 늘고 있다. 미국의 경마 관련 회사에도 납품하고 있다. 지방 세포를 분리해 말의 관절에 넣으면 부상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빠르단다. 최근엔 일본의 관절 치료 전문 회사와 계약했다.
무릎 등 관절을 다친 운동선수들이 “부상을 당했는데 가급적 빨리 회복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박사는 정중히 거절한다. “난 성형외과 의사이지 정형외과 의사는 아니다”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들로부터 지방 활용에 대한 요청이 들어오면 모두 들어준다. “다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와도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를 연구에 활용해 ‘항노화’ 기술을 만들 계획이다. “황 교수의 줄기세포 분리 빛 배양 기술 노하우를 잘 활용해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면 노화를 방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가족 중 젊은 자식들의 세포를 분리한 뒤 아버지나 어머니의 몸에서 빼낸 세포에 이식하고 배양해 아버지나 어머니 몸속에 다시 넣어주면 젊어질 수 있다’는 가설하에 연구 중이다.”
허황된 꿈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턱을 깎는 기계를 만들고 지방으로 다양한 시술을 해 성공한 이 박사이기에 주변 사람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항노화 방법을 찾으면 가장 먼저 날 묵묵히 지켜봐준 아내부터 시술해주겠다”며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13-12-14
성형외과 전문의 이희영 박사는 ‘발명왕 의사선생님’으로 불린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바로일성형외과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일본에 팔기 위해 제작하고 있는 지방 분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사무실은 다양한 공구들이 들어차 있어 공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악….” “여보, 왜 그래?”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의사인 아내도 정신이 완전히 나간 상태에서 나를 병원으로 옮겼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이 찌릿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심장이 좋지 않으니 스텐트(심혈관이 막혔을 때 넣는 기구)를 삽입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의 시절 혈관외과에서 파견근무할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삽입한 지 1년여가 지난 뒤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스텐트를 보면서 막혔던 혈관과 똑같이 여기저기 엉겨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스텐트를 넣어도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내 심장에 스텐트를 넣으라고?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스텐트를 넣지 않고 심장을 보호할 방법이 뭔지를….
성형외과 전문의 이희영 박사(47)가 ‘발명왕 의사’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1999년 초 지나친 흡연과 과음으로 심근경색이 찾아왔을 때 그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특허 출원만 200개 이상 한 의사가 됐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았다.
당시 가톨릭의대 은사 중에서 지방의 효용성을 연구하던 분이 있었다. ‘지방이 우리 몸에 해로운 것보단 이득이 되는 게 많다’는 그 은사의 주장에 주의를 기울였다. 당시 지방을 분리해 동물에게 투여하는 시술은 많이 있었다. 동물의 몸에서 뺀 지방을 다시 그 동물에게 투여하는 시술이었다. 부작용도 없었고 효과도 좋았다.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한창일 때였다.
해외 사례 등을 찾아보면서 ‘내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넣으면 되겠네’ 하면서 지방 줄기세포를 연구했다.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정맥주사로 놓았더니 심장이 좋아졌다. 지금은 당시보다 담배와 술을 2배 이상으로 많이 하는데 심장은 멀쩡하다. 지방은 혈관을 늘리고 증식시키는 효과를 준다. 어떤 상처든 지방을 넣어주면 회복능력이 훨씬 좋아진단다. 그때부터 ‘지방 마니아’가 됐다.
의대에 입학한 이 박사는 뭘 전공할까 고민하다 성형외과를 택했다.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지만 예술적 감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분야가 성형이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고치면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의 취미는 ‘만들기’. 평소 기계란 기계는 다 뜯어보고 그 원리를 분석했다. 궁금하면 뭐든 ‘열어보면 되지’라는 게 그의 철학. 그의 사무실에는 망치와 드라이버 등 의사라기보다는 공장의 공원을 연상할 정도로 다양한 공구들이 넘쳐난다. 대학 다닐 땐 자동차에 빠졌었다. 세계 최고의 엔진을 만들어보겠다며 고향인 군산에 공장용지를 사 자동차 엔진을 여러 개 해체해 놓고 연구를 했었다. 이 박사에게 세상은 연구할 것들을 계속 만들어 줬다.
지방을 투입하면서 심장이 좋아지자 ‘내가 사람들에게 뭘 만들어 주면 더 편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1년 메디칸이라는 의료기기 제조 회사를 차린 배경이다. 턱 깎는 수술로 사람들이 죽는 사례가 발생하는 걸 보면서 ‘최소침습 안면 윤곽기’라는 턱 깎는 기계를 만들었다.
“예뻐지려다가 죽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알아봤더니 너무 날카로운 것으로 턱을 깎고 있었어요. 그래서 신경을 잘못 건들면서 사망사고까지 났습니다. 날카롭진 않으면서도 사포처럼 부드럽게 비벼서 깎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깎은 것을 어떻게 신체 밖으로 내보내느냐였죠. 그걸 연구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발명왕’ 이희영 박사가 미국에서 받은 다양한 특허 인증서.
이 박사가 만든 최소침습 안면 윤곽기는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양악수술은 크게 절개해야 하지만 각진 턱만 깎으면 턱 밑에 1cm만 상처를 내고 윤곽기를 투입해 수술하면 끝이다. 수술한 뒤 밴드 하나 붙이고 바로 병원을 나갈 수 있다.이 박사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지방 이식기를 만들었다. 지방을 분리해 다시 넣는 과정을 간단하게 한 기계다. 가슴에는 지방 이식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방을 분리해 세포를 가늘게 분쇄해 넣으니 효과가 좋았다. 얼굴 성형의 경우 지방 세포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이용하는 사례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 박사는 세밀하게 분쇄한 지방을 가슴 및 얼굴에 넣는 시술로 한국의 성형 지도를 바꿨다.
2009년엔 서울 강서구청에 ‘지방을 의료 폐기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을 했다. 체내에서 분리한 지방은 바이러스 등 감염 위험이 있는데 의료 폐기물이란 명문화가 되지 않아 그냥 하구수로 버려지는 일이 잦았다. 하수구가 막히는 사례도 많았다. 성형외과 의사들에겐 고민거리였다. 이 박사는 지방을 그냥 버리는 대신 활용하면 어떨까란 고민을 하다 지방에서 기름을 제거하고 남은 조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소재를 만들었다. 지방조직 활용으로 ‘원천 특허’를 받았고 2011년엔 40억 원짜리 서울시 전략과제인 ‘지방줄기세포 자동 분리 및 배양 장치’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다.
이 박사는 눈매 교정이란 ‘신천지’도 열었다. 눈을 예쁘게 하려면 쌍꺼풀 수술밖에 없었는데 눈 모양을 잘 잡아주는 눈매 교정 기술을 개발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수술이냐”며 성형외과 의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일반화된 시술이 됐다. 서바이벌 게임 때 쓰는 총도 만들었고 최근엔 기존 안경과 전혀 다른 3차원(3D) 안경을 발명해 특허 출원을 해놓은 상태다.
지금까지 연구에 들어간 돈만 100억 원이 넘는다. 성형외과 의사인 아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성형외과 의사이면서 발명에만 매달리는 남편이 야속했지만 묵묵히 지켜봤다. 돈은 많이 썼지만 발명에 재미 붙인 남편이 싫지는 않았다.
메디칸의 연 매출은 60억 원이다. 그러나 돈을 벌지는 못했다. 연구비가 더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돈을 벌 일이 많이 생기고 있다. 지방 세포를 분리해 분쇄하는 기계에 대한 수요가 여기저기서 늘고 있다. 미국의 경마 관련 회사에도 납품하고 있다. 지방 세포를 분리해 말의 관절에 넣으면 부상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빠르단다. 최근엔 일본의 관절 치료 전문 회사와 계약했다.
무릎 등 관절을 다친 운동선수들이 “부상을 당했는데 가급적 빨리 회복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박사는 정중히 거절한다. “난 성형외과 의사이지 정형외과 의사는 아니다”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들로부터 지방 활용에 대한 요청이 들어오면 모두 들어준다. “다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와도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를 연구에 활용해 ‘항노화’ 기술을 만들 계획이다. “황 교수의 줄기세포 분리 빛 배양 기술 노하우를 잘 활용해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면 노화를 방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가족 중 젊은 자식들의 세포를 분리한 뒤 아버지나 어머니의 몸에서 빼낸 세포에 이식하고 배양해 아버지나 어머니 몸속에 다시 넣어주면 젊어질 수 있다’는 가설하에 연구 중이다.”
허황된 꿈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턱을 깎는 기계를 만들고 지방으로 다양한 시술을 해 성공한 이 박사이기에 주변 사람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항노화 방법을 찾으면 가장 먼저 날 묵묵히 지켜봐준 아내부터 시술해주겠다”며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1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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