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도를 아십니까’ 따라가봤다…진용진 머릿속을 알려드림

해암도 2023. 4. 28. 10:54

흰 와이셔츠에 파란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변변한 세트도 없이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간다.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영상이지만, 100만 조회 수를 가볍게 넘긴다. 700만 번 넘게 재생된 영상도 적지 않다. 비결은 뭘까.

일단 소재가 기발하다.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을 따라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부자도 요거트 뚜껑을 핥아 먹을까. 목욕탕은 수도세가 얼마나 나올까. 추진력도 범상치 않다. 국회의원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 직접 국회의사당에 찾아가 의원과 하루를 보내고, 불법 유흥주점 아르바이트를 지원해 면접을 보기도 한다. 2019년 2월 크리에이터 진용진(31)은 이렇게 콘텐트 시장에 첫발을 뗐다.

그리고 4년. 첫 콘텐트 ‘그것을 알려드림’(이하 그알)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제 진용진은 ‘오징어 게임’ 실사판과 같은 상상 초월 대형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미국 미스터 비스트(※구독자 1억3000만 명, 연간 소득 약 640억원의 세계 1위 유튜버)의 한국 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소한 궁금증 해소 콘텐트는 이제 돈에 관한 인간의 심리를 해부한 ‘매운맛 예능’,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린 영화 리뷰 등 창의적인 결과물로 진화했다. 최근 진용진을 만나 그에 대해 궁금한 점을 모조리 물어봤다. 대면 인터뷰와 서면 인터뷰 등을 동원해 정리한 ‘진용진을 알려드림’.

크리에이터 진용진은 지난 1월 말 서울 강남구 쓰리와이코프레이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 쓰리와이코프레이션

📌TMI Q

유튜브 구독자들이 영상에 남긴 댓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뭔가.

 “1빠” 라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구독자들이 주로 남기는 댓글인데, 누군가에게는 일요일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내 영상이 기다려지는 일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라 뿌듯했다. 

진용진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로 “1빠”를 꼽았다. 사진 쓰리와이코프레이션

📌일러두기

 

1. 뭐하는 사람:
무한경쟁시장 유튜브에서 자체 제작 콘텐트로 구독자 263만 명의 선택을 받은 크리에이터. 2019년 구독자의 사소한 궁금증을 직접 취재해 해결하는 ‘그것을 알려드림’으로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국내 1위에 올랐다. 2021년 4월엔 웹 예능 ‘머니게임’으로 최고 조회 수 1056만 회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이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쓰리와이코프레이션에 채널을 넘기고 창작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MBC와 손잡고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을 제작했고, 후속작인 예능 ‘버튼게임’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에 진출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실제 있는 영화인 척 리뷰하는 콘텐트인 ‘없는영화’로 유튜브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왜 인터뷰:
수많은 크리에이터의 등장으로 레드오션이 된 유튜브. 콘텐트 업계에선 벌써 ‘유튜브 그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튜버로 시작해 OTT로 판을 넓힌 크리에이터 진용진도 유튜브 다음 플랫폼을 고민하고 있다. 16부작 드라마가 8부작으로 줄어들고, 이마저도 길다며 유튜브에서 30분짜리 요약본을 보는 게 요즘 시청자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콘텐트 업계에서 크리에이터 진용진의 다음 구상은 무엇일까. 대기업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그는 어떻게 활동을 이어갈까.

3. 대표작, 대표 업적:
2019년 유튜브 ‘그것을 알려드림’ 제작
2020년 유튜브 채널 ‘진용진’ 구독자 수 200만 명 돌파
2021년 4월 유튜브 ‘머니게임’ 기획·연출
2021년 11월 MBC ‘피의 게임’ 연출
2021년 12월 유튜브 ‘없는영화’ 기획·연출
2022년 11월 웨이브 ‘버튼게임’ 기획·연출

4. 이 인터뷰를 읽어야 할 사람:
진용진 채널의 구독자 혹은 그의 콘텐트를 좋아한다면
하루 종일 유튜브만 봐도 질리지 않는다면
나도 해볼까? 유튜버
서바이벌 예능의 팬이라면

첫 콘텐트인 ‘그알’은 어떻게 탄생했나.
처음 유튜브에 콘텐트를 올리기 시작한 게 2018년이다. 그 전에 영상 편집자로 활동했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이렇게 하면 잘되겠다는 노하우가 쌓인 상태였다. 그런 경험을 활용하면서 2019년 제대로 된 콘텐트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그알’이었다.
‘그알’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었나.
초반에는 어렸을 때 스치듯 지나간 기억들을 많이 떠올렸다. 콘텐트가 알려질수록 구독자들이 댓글로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특히 구독자들은 그때 유행하는 드라마나 예능이 실제 생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에서 강화유리와 일반유리를 유리 전문가가 구슬을 떨어뜨려서 나는 소리로 구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묻는 구독자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 유리 업체 대표를 찾아가서 실험을 하는 콘텐트를 만들기도 했다.(※결론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유튜브 특성상 인기를 얻으려면 소재가 자극적인 쪽으로 흐를 수 있는데.
‘그알’이 갑자기 큰 관심을 받고 조회 수가 잘 나오니까 좀 취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구독자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수위가 세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는 ‘장기매매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연락 달라’는 명함을 보고 직접 전화하는 콘텐트를 만든 적도 있다. 자극적인 걸로는 그때가 정점이었던 것 같다. 직접 전화해 보니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본인 안전도 생각해 가면서 영상을 찍어 달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고, 그때부터 안전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나.
솔직히 어느 정도 잘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알’ 제작하기 전에 5년 정도 아르바이트로 영상 편집을 했다. 그땐 유튜버도 많이 없었고, 아프리카tv BJ가 많았다. 거기에 올라갈 자투리 영상을 편집하는 게 주 업무였다. 근데 기억으로 잘된 케이스는 거의 없고 망하는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봤다. 유명한 사람 말투를 따라 하면서 먹방을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방송하다가 망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런 실패 사례를 보면서 감이 생겼다.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클릭하고 저렇게 하면 망하겠다’는 나름의 치트키를 모아서 만든 게 ‘그알’이었다.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금방 잘돼서 멘붕(멘털 붕괴)이 오긴 했다.

 

진용진은 2019년 첫 히트 콘텐트 ‘그것을 알려드림’을 선보였다. 사진 진용진 유튜브 캡처

(잘됐는데) 왜 멘붕이 왔나.
‘분명 한 번은 기회가 오겠지’ 이런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오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근데 PC방 영상(※진용진은 ‘동네마다 있는 1층에 허름한 PC방 들어가봤습니다’라는 도박장 방문 영상으로 3개월 만에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를 했다)이 갑자기 인기 급상승 동영상이 되고 확 뜬 거다. 그땐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구독자가 1만 명씩 늘어날 정도였다. 부담 없이 하고 있었는데 영상 조회 수가 100만 회 이렇게 나오니까 잠깐 당황했다. 원래 준비했던 주제가 있는데 그걸 그대로 만들어도 될지 고민도 많았다. 다행히 크게 당황하지 않고 영상을 계속 만든 덕에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첫 시도부터 잘된 건 아닐 텐데 시행착오는 없었나.
채널 초창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콘텐트를 만든 적이 있다. 옛날 예능 프로그램 중에 MBC ‘느낌표’ 같은 콘셉트를 떠올렸다. 근데 막상 찍고 나니 사람들 반응이 딱히 없었다. 또 ‘진용진의 일기장’이라고 브이로그 형식의 콘텐트도 만들었었다. 구독자들은 그것도 “지금 보니 재밌다”고 얘기해 주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엔 좀 오글거리긴 한다. 그렇게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정도면 다른 크리에이터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잘 만든 콘텐트의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나.
성격이 명확하다. 흐지부지한 콘텐트는 잘되기 어렵다. 웃길 거면 확 웃기고, 무서울 거면 확 무섭고, 감동을 주려면 큰 감동을 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클릭한다. 또 잘 만든 콘텐트는 영상의 평균 조회 수가 높다. 어떤 하나는 800만 회인데 다른 콘텐트는 1만 회 이렇게 나오면 그건 운 좋게 하나의 영상이 떴다고 봐야 한다. 그건 잘 만든 것이 아니다.
가장 최근 구독한 유튜브 채널은 뭔가.
‘조화로운삶’이라는 채널이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혼자 시골로 내려가 일상을 꾸리고 있는 1인 크리에이터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이 채널을 보고 있으면 치열하게 살면서 겪는 바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자극적이고, 맵고, 웃긴 콘텐트가 가득한 유튜브 채널들 사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순수한 친구 같은 채널이다, 시골집에 사는 티 없는 사촌동생을 보는 느낌도 든다. 
좋은 크리에이터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나.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았을 때 자기 콘텐트를 쭉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어쩌다 알고리즘 때문에 영상 하나가 터지면 아까 말했던 것처럼 멘붕이 온다. 그때 당황하지 않고 흐름을 계속 이어가는 게 크리에이터의 실력이다. 간혹 어떤 채널은 영상 하나의 조회 수가 30만 회 넘게 나왔는데 구독자는 1만 명밖에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으로 재밌는 영상을 발견하면 그 채널 들어가서 다른 영상은 뭐가 있는지 찾아본다. 그때 다른 영상들도 재미있으면 채널이 뜨는 거고, 아니면 흐름이 끊기는 거다.
유튜브 콘텐트 만들 때 우선 고려하는 게 있나.
가장 중요한 건 ‘노란 딱지’가 붙으면 안 된다는 거다.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를 위반하면 경고를 받는데, 그게 3번 쌓이면 채널이 아예 삭제돼 버린다. 예전에 가출 청소년 성매매에 대한 내용으로 ‘그알’을 만든 적이 있는데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금방 노란 딱지가 붙었다. 먹고살 수단이 유튜브밖에 없는 사람들한테는 이게 엄청 무서운 경고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많은 분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상 위주로 만들기 시작했다.
‘머니게임’이나 ‘없는영화’ 같은 콘텐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어릴 때부터 잡생각이 많았다. 공부에 집중도 못 하고 몽상만 하는 애였다. 그땐 그게 단점이었다. 근데 그때 했던 잡생각이 ‘없는영화’ 속 단편영화를 만들 때 도움이 정말 많이 됐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 도중에 교실 앞문으로 좀비가 들어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는 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총 모양에 맞는 쇳덩어리만 구하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내가 학교 일짱인데’ 이런 엉뚱한 생각도 했다. 그래서 총을 만드는 중학생을 소재로 ‘없는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 한 중학생이 직접 만든 총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감이 올라가고 학교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알고 보니 그 총은 발사가 안 되는 총이었다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영상을 실제로 만들진 못했다.
왜 못 만들었나.
제작비 한계가 있었다. 실제 총을 구현해야 영상이 사는데 어디서 비비탄총 같은 걸 갖고 와서 진짜 총이라고 우기면 좀 짜치는 것 같지 않나.(웃음)
채널 구독을 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끊으셔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 팀은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변화할 거고, 구독자들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거다. 나는 지금까지 늘 방법을 찾아냈었기에, 구독을 끊은 분들이 다시 구독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행복을 드리는 게 내 사명이자 목표다.

진용진은 세상에 없는 영화를 실제 있는 영화인 척 리뷰하는 콘텐트 ‘없는영화’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진용진 유튜브

어렸을 때 잡생각이 많았다고 하는데 장래 희망은 뭐였나.
이 질문을 받고 머릿속에 30~40개가 스쳐 지나갔다. 어느 날은 오락실 사장이 되고 싶었다가 다음 날은 연예인도 되고 싶고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것 중에 기자도 있고 PD도 있었다. 물론 어떤 꿈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걸 위해 달리는 학생은 아니었다.
쓰리와이코프레이션(카카오엔터 산하)에 채널을 매각한 이유는 뭔가.
일단 나는 사업가 기질이 없다. 혼자 채널을 운영할 때는 직원이 세 명 정도 있고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쓰리와이코프레이션에 오고 나서는 비즈니스 관련 문제를 회사에서 다 해결해 주고 있다.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 좋다. 난 영업도 잘 못하니까 회사 규모를 키우겠다는 욕심도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도 어떤 회사의 대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제작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혼자 채널 운영할 때 만들었던 ‘그알’은 나랑 카메라감독 그리고 편집자 두 명이면 충분했다. 요즘 만들고 있는 ‘없는영화’는 스태프만 20명 가까이 된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영상에 나왔으니까 출연료가 필요없었는데, 이제 배우들 출연료도 고려해야 한다. 촬영만 2주 걸리는 경우도 있다. 비용으로만 따지면 혼자 할 때보다 30~40배는 더 들어가는 것 같다.
제작비가 커진다는 건 연출자로서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한데.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단 1억~2억원을 제작비로 써봐야 나중에 10억~20억원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왕 더 일하려고 회사에 들어온 거니까 수익 관련 문제는 쓰리와이코프레이션에 넘기고 창작자로서 역량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초기의 ‘유튜브 감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
건방진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유튜브 구독자의 니즈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본다. ‘없는영화’를 만들 때도 그 점을 신경 쓴다. 고등학교 일진들 얘기를 다룬 콘텐트를 촬영할 땐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는 기법인 핸즈헬드로 찍어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게 구독자들이 원하는 날것 그대로의 유튜브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콘텐트가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 콘텐트 퀄리티가 올라간다고 유튜브 특유의 날것 감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접 대사를 쓰려면 사전 조사도 중요한데 어떤 식으로 하나.
‘학교게임’이라는 영상을 만들기 전에는 모교를 먼저 방문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명문고는 아니라서 일진이 많았다. 교문 앞에서 직접 학생들 인터뷰를 했다. 또 ‘그알’을 만들면서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났는데 그 경험이 대사 쓸 때 도움이 많이 된다. 범죄자도 인터뷰했고, 높은 분도 많이 만나봤다. ‘이 사람은 이 위치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구나’ 느꼈던 게 대사 쓸 때 많이 떠오른다.
만났던 인터뷰이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불법 온라인 게임 핵(버그)을 팔다가 걸려서 재판까지 갔던 고등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그 학생이 직접 프로그래밍해 핵을 만들었던 건 아니고, 인출책 중 한 명이었다. 그 학생이 한 달에 300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집행유예까지 받았다. 근데 이미 그 학생은 다른 세상을 봐버린 거다. 공부는 당연히 그만뒀고, 세상을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그 학생에겐 어린 나이에 그렇게 큰돈을 만진 게 엄청난 불행인 거다. 그 학생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머니게임’이나 ‘피의 게임’처럼 돈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많이 다루는 것 같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던 게 한몫했던 것 같다. 돈만큼 사람을 크게 자극하는 게 뭔지 여러 번 고민해 봤는데 아직은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진용진은 2021년 유튜브 예능 ‘머니게임’을 공개하며 최고 조회 수 1065만 회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사진 진용진 유튜브

수익은 어떤 식으로 창출하는지.
지금은 유튜브 멤버십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대부분이다. 나름 그 시스템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 봤자 제작비 빼고 나면 본전이다. 그 외에 수익은 주식 복리 말고 딱히 없다.(웃음)
오히려 혼자 채널 운영할 때 수익이 더 많았다고 들었는데.
엄청났다. 그땐 제작비라고 해봐야 기름값이랑 밥값, 인터뷰이한테 주는 사례비 정도였다. 편집자 수당까지 다 합쳐도 한 회 만드는 데 60만~70만원밖에 안 들었다. 그렇게 찍어내는데도 영상이 나오니까 효율은 그때가 더 좋았다.(※진용진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2019년 당시 많을 땐 월 5000만원씩 벌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요즘 ‘없는영화’를 만들면서 당장 얻는 수익은 적어졌지만, 부가가치가 쌓이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이 경험이 없으면 나중에 OTT 드라마도 못 만들 거고 영화도 못 만들지 않겠나. 나름대로 미래의 자산을 쌓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는.
드라마와 영화, 극을 계속 만들어 보고 싶다. 예능은 기회가 온다면 해볼 생각은 있지만 지금 더 끌리는 건 시나리오 연출 쪽이다. 올해는 OTT 드라마나 영화 쪽으로 도전을 많이 해볼 생각이다.
콘텐트 트렌드의 변화를 체감하는 게 있나.
대형 유튜버들 다 비슷한 고민 중이다. 요즘엔 긴 영상들 조회 수가 예전 같지 않다. 숏폼으로 트래픽이 많이 쏠리는 게 사실이다. 아예 긴 영상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OTT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본인 유튜브 콘텐트도 조회 수가 떨어졌나.
점점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근데 아직은 숏폼 그 자체로 제작된 콘텐트가 많지 않다 보니 긴 영상을 짧게 가공하는 게 대부분이다. 유튜브에 1차 생산물이 없으면 쇼츠도 없는 거다. ‘없는영화’ 쇼츠도 조회 수가 400만 회까지 나온다. 그래서 원본 영상 조회 수가 잘 안 나온다고 해서 그 콘텐트가 부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지금처럼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계속된다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준비할 거다.
숏폼 콘텐트도 구상한 적 있나.
짧게 생각만 했다. 근데 숏폼도 어느 정도 정해진 타입이 있다. 노래가 나오면서 어떤 사람이 변신하는 연기를 하는 영상도 있고, 자막과 함께 사람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도 있다. 근데 이미 있는 타입으로 똑같이 만들면 절대 잘될 수 없다. 새로운 거 없이 알고리즘 운에 기대는 것밖에 안 된다. 그래서 만약 본격적으로 숏폼을 만든다면 뭐가 됐든 새로운 걸 시도할 거다. 조회 수든 화제성이든 참신함이든 경쟁자를 다 이길 수 있는 걸 만들 거다.

진용진은 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장점을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진 쓰리와이코프레이션

크리에이터로서 본인의 강점은.
계속 도전하는 게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콘텐트가 한 번 잘되고 그 인기가 쭉 그대로 가면 좋겠지만 유통기한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먼저 알아차리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편이다. ‘그알’만 계속해도 잘될 텐데 다른 영상을 올리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안정적으로 조회 수가 잘 나오는 게 있는데 왜 새로운 걸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없는영화’처럼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는 콘텐트를 유튜브에서 한다는 게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거다. 근데 ‘그알’을 계속 만들면서 예전에 만들었던 영상보다 더 재밌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목욕탕은 수도세가 얼마나 나올까?’ 이렇게 깽뚱한(※‘엉뚱하다’의 전북 방언) 질문을 또 떠올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그 이상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다른 크리에이터들도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다들 고민 한가득이다.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결국 고민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조회 수가 안정적으로 잘 나올 거라는 보장은 누구에게도 없다. 공무원 같은 크리에이터는 있을 수 없다. 개인적으론 유튜브도 몇 년 지나면 예전만 못한 플랫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 더 재밌는 플랫폼이 나올 거라고 본다. 결국 크리에이터는 계속 자기 자신을 부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콘텐트 시장은 점점 치열해지는데 크리에이터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
솔직히 허수가 많다. 100명이 있으면 그중 99명은 허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그렇게 치열하진 않다.(웃음) 끝까지 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 내일모레 운동 관둘 사람 특징이 있다. 시작하기 전에 프로틴이랑 아령 사고 헬스장부터 끊어놓는 거다. 근데 1년 뒤에도 운동할 사람은 집에서 팔굽혀펴기부터 시작한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고프로 사고 비싼 장비 들이는 순간, 관둘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또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게 분명 있다. 전공이나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말을 잘하면 나와서 자막만 깔고 어떤 이슈에 대해 정리해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관심 분야가 명확하면 그것에 대해 소개하는 콘텐트를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남이 봤을 때 이걸 클릭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또 내 얘기가 퇴근 시간에 1분 이상 들어줄 정도로 재밌는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보통 퇴근길에 유튜브를 많이 본다. 그 시간에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을 수도 있고, 노래를 들을 수도 있는데 내 콘텐트에 시간을 내주는 거다. 1분 이상만 붙잡아두면 사람들은 시간을 낸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보기 마련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사람들을 1분 동안 붙잡아둘 자기 분야만 있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크리에이터로서 진용진의 목표는.
단기적인 목표는 일단 OTT 진출이다. 내가 쓰는 시나리오가 OTT 관계자들한테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장기적인 목표는 이 일을 계속하면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남들과는 다른 영상을 만드는 거다.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