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닭은 외계인이었죠" 영국 과학자가 밝혀낸 치킨의 기구한 운명

해암도 2022. 11. 19. 13:12

기원전 1650년 무렵, 동남아시아 정글엔 적색야계(red jungle fowl)라 불리는 야생닭이 살았습니다. 아열대 우림에 사는 동물답게 화려한 깃털 색을 자랑했죠. 불그죽죽한 볏이 머리를 감쌌고 노란빛, 초록빛, 갈색빛이 어우러진 깃털엔 윤기가 돌았습니다. 이즈음 이 야생닭은 우연히 인간과 접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이 새는 몰랐을 겁니다. 자신의 후손이 평균 수명 ‘한 달 반’밖에 안 되는 지구 최대 규모의 동물 집단이 된다는 사실을요.

이 병아리도 언젠가 사람에게 먹힐 것이다. 하지만 닭이 처음부터 인간의 ‘도시락’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이렇게 인류가 대량으로 닭을 섭취하게 된 건 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사진은 2021년 3월 31일 아프가니스탄의 한 양계장. 사진 신화=연합뉴스

동남아에 살던 적색야계(학명 Gallus gallus)는 신석기 시대의 어느 날 인간과 어울려 살기 시작했다. 인간은 그때부터 닭을 보고 맛있는 먹을 거리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처음 밝혀진 ‘치킨의 기원’

2013년 9월 영국 예술 및 인문학연구위원회는 ‘닭과 인간의 상호 교류’을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4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사실 소나 돼지와 비교하면, 닭의 가축화 경로에 대해선 당시 연구된 게 많지 않았거든요.

닭은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육류다. 하지만 닭과 인간이 관계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대부분 인류 역사에서 닭은 초자연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때문에 추앙 받는 존재였다. 사진은 2019년 6월 9일 독일에서 열린 닭 흉내 경연대회에 참여한 사람들. 사진 DPA=연합뉴스

물론 영국 납세자 연맹 같은 단체에서 “이런 새대가리 같은 아이디어(실제 워딩입니다)에 세금 낭비하지 말라”고 비판했지만, 연구 지원금은 무사히 전달됐습니다.

그리고 9년이 흘렀습니다. 치킨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의 연구가 지난 6월 마무리됐습니다. 그레거 라슨 영국 옥스퍼드대 고유전학ㆍ생물고고학 연구네트워크 디렉터가 연구를 이끌었고, 영국과 유럽 과학자 다수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우선 세계 89개국 600개가 넘는 선사시대 유적지를 뒤져 언제 어디서 가축화된 닭이 나타났는지 조사했습니다.

사실 이 연구 전까진 치킨의 기원에 대해 기술한 연구 자료가 적었습니다. 그나마 1988년 영국국립역사박물관의 바바라 웨스트 박사와 중국사회과학원의 저우벤슌 박사가 쓴 논문 한 편이 치킨계의 전설과 같은 논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논문의 주장에 따르면, 적색야계는 기원전 6000년 동남아에서 가축화한 후, 북쪽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후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 사이에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인도에선 기원전 2000년쯤 들어왔고, 철기 시대에 유럽으로 보급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논문이 제시한 ‘고고학적 증거’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후대 연구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치킨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 라슨 박사 등 영국 과학자들이 나선 것이죠. 이들은 세계 곳곳 유적지에서 나온 닭 뼈 화석을 모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했습니다. 고대 문헌에 기록된 닭의 흔적과 그림ㆍ조각ㆍ벽화를 샅샅이 훑으며 교차 검증을 했죠.

ADVERTISEMENT

그랬더니 닭 뼈 화석 대부분의 연대 기록에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5500년 전 닭 뼈라고 기록된 자료가 알고 보니 20세기 것이었고, 다른 새의 뼈를 닭 뼈라고 기록한 자료도 있었죠.

이번 연구 과정에서 나온 무수한 오류들. 세계 여러 유적지에서 발굴한 닭뼈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다. 왼쪽 유적지 옆에 쓰인 것이 닭 뼈에 기록된 추정 날짜이고, 오른쪽이 검사 결과. 기원전에 나온 것으로 기록된 닭 뼈가 극히 최근인 경우도 있었다. 사진 Larson et al, Antiguity, 2022

무수한 보정, 재증명과 검증을 거치며 10년 가까운 노력 끝에 연구진은 지구 상 한 곳을 가축화된 닭의 기원지로 지목했습니다. 닭 뼈 화석 중 가장 오래된 녀석이 발견된 곳이죠.

태국 중부에 있는 반논왓이라는 지역입니다. 이곳의 닭 뼈는 기원전 1650~1250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6000년이라는 기록보다 훨씬 최근의 일이죠. 물론 이후 추가로 닭 화석이 다른 곳에서 발견되면 이 기원도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닭은 동남아에서 가축화됐을까요.

치킨 연구자들이 내세우는 유력한 가설은 이렇습니다. 일단 가축화된 닭의 조상인 적색야계가 동남아 지역에 분포해 살고 있었습니다. 목청이 크고 색깔이 수려한 이 새는 정글에 숨어 살았죠.

그러다 신석기 시대 농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인간들이 대규모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당시 반논왓에서도 쌀과 기장 농사가 지어졌죠.

농사를 지은 밭에는 추수 뒤 씨알 굵은 알곡이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야생닭은 알곡을 주워 먹으려고 정글에서 나왔던 것이죠. 그러면서 인간과 교류가 시작됐고, 닭이 인간의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는 겁니다.

가축화된 닭이 처음 등장한 시기. 연구진이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날짜다. 태국 반논왓에선 지금으로부터 3650년 전에서 3200년 전 사이에 가축화한 닭이 등장한 것으로 나온다. 이 표에는 3200으로 표시돼 있다. 닭의 등장 시기를 살피면 닭이 바다를 건너 점점 유럽으로 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 Larson et al, PNAS, 2022

이 가설의 근거로 연구자들은 쌀농사의 전파 경로를 듭니다. 쌀농사가 중국 남부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져나간 추이와 닭의 전파 경로가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죠. 라슨 박사는 “여러 데이터 오류를 제거하고 보면 닭의 전파와 쌀의 전파는 매우 닮았다”며 “닭이 인간과 어울려 살게 된 이유가 인간의 신석기 농업 혁명 그리고 이 양식이 퍼져나가는 경로와 닮았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메커니즘”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럽으로 간 닭, 처음엔 외계인 취급 받았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건을 사고팔았습니다. 먼 지역까지 교류한 것이죠.

닭도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넓은 대양을 건넜습니다. 동남아에서 가축화된 닭은 그로부터 500년쯤 뒤부터 유럽으로 퍼집니다. 1000년쯤 흐르면 영국과 북유럽까지 퍼지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유럽을 향한 닭의 기분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본 유럽인의 반응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라슨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시 유럽엔 깃털이 화려한 새가 없었다. 대부분 갈색의 새뿐이었다. 그런데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의 닭을 보면 어떨까. 그 새가 그리고 100만 킬로미터는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왔다면? 아마 외계인을 보는 듯했을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닭에게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유럽에선 더 먼 곳에서 온 것일수록 신비로운 힘이 더 크다고 생각했죠. 당시 유적을 살펴보면 닭이 사람과 같이 묻힌 무덤도 발견됩니다. 부러진 닭의 다리를 고이 고쳐준 흔적도 발견되죠.

유럽에서 처음 닭을 본 사람들은 닭에게서 초자연적인 힘과 신비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죽은 닭을 장사지내기도 하고(사진 B), 인간이 죽으면 함께 묻기도 했다(사진 C, 원 안이 닭 뼈). 사진 Larson et al, Antiguity, 2022

닭이 경외심을 부른 존재였다는 증거는 중세 유럽에서도 발견됩니다. 가톨릭 교회의 첨탑에 붙은 닭 형상이죠. 라슨 박사는 “성경을 보면 예수의 부활과 닭 울음소리를 함께 언급한다. 그만큼 닭을 신성과 가까운 존재로 여겼다는 것이다. 여러 주화에 닭을 새겨넣은 것도 닭을 경외했다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닭이 처음 전래한 곳에선 먹을 엄두를 못 냈다고 합니다. 닭이 들어오고 500년은 지나야 사람들은 닭을 먹기 시작했다고 라슨 박사는 말합니다. 그는 “닭은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아주 먼 곳에서 온, 본 적도 없는 새니까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봤을 것이다. 외계인이 도착했는데, 그걸 바로 먹지는 않지 않을까”라고 했죠.

유럽 성당 첨탑엔 닭 형상이 세워진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닭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긴 데서 유래했다. 닭의 울음소리는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진 Historic Ipswich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 같은 곳에서는 닭이 처음 들어온 뒤 먹는 데까지 700~800년이 걸렸습니다. 시저는 갈리아 전기에서 “브리튼 인은 산토끼, 닭, 거위를 안 먹는다. 신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기록하기도 했죠. 당시 시저의 로마인들은 닭도 훨씬 먼저 들여와서 이미 닭을 먹기도 했습니다.

아마 닭은 유럽 거리를 지금의 비둘기나 고양이가 돌아다니듯 돌아다녔을 겁니다. 사람과 어울려 살며 사람이 남긴 먹이를 주워 먹는 동물들처럼 말이죠.

닭을 ‘벌크업’ 시킨 전쟁

닭은 인류와 함께한 3650년 역사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3600년쯤은 삐쩍 마른 동물이었습니다. 키워봤자 먹을 게 없으니 대량으로 사육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유럽 전역이 식량난에 시달립니다. 전쟁이 끝나고 초토화된 유럽엔 먹을 것이 크게 부족했죠. 미국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유럽에 소고기, 돼지고기를 비롯한 식량을 수출합니다.

그러니 미국에서도 먹을 고기가 크게 모자랐죠. 이때 생각한 아이디어가 닭을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닭은 소나 돼지를 못 먹는 빈민들이 근근이 키워 잡아먹는 존재였죠.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과 1947년 미국에서 전국적인 행사가 열립니다. 타이틀은 ‘내일의 치킨(Chicken of Tomorrow)’. 세계 최고의 치킨을 뽑는 대회였죠. 전국에서 닭 좀 친다는 사람들은 다 몰려들었습니다.

우수한 닭은 ‘내일의 치킨’ 위원회가 준 상을 받기도 했다. 이때 상을 받은 닭들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지금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품종이 됐다. 사진 내일의 치킨 위원회

이렇게 1940년대의 닭들은 보통 살집이 없었다. 요즘 육계와 비교하면 비쩍 말랐다. 사진 내일의 치킨 위원회

러시아 옥차브리스카야 양계장에서 나온 육계. 위 사진의 1940년대 닭과 비교하면 크기 차이가 확연하다. 사진 타스=연합뉴스

어떤 닭이 생김새가 아름답고, 어떤 닭이 먹음직스러운지를 겨뤘죠. 이때 출품된 닭 품종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까지 공급되면서 세계를 휩쓸게 됩니다. 코브, 아버 에이커스, 인디언 리버, 피터슨, 로스 등 사실 우리가 먹는 육계 품종은 다 이때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50년간 이뤄진 닭의 품종 개량으로 말라깽이 닭은 엄청난 덩치를 갖게 됐다. 생후 56일 된 닭이 1957년엔 905g이었지만, 2005년엔 4202g으로 성장했다. 50㎏짜리 사람이 개량을 통해 232㎏이 된 셈이다. 사진 Zuidhof et al., Poultry Science, 2014

닭 품종 개량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57년엔 두 달 쯤 키운 영계가 1㎏이 안 됐지만, 2005년엔 4㎏이 넘는 엄청난 양적 개량이 이뤄집니다. 그러면서 닭은 세계 최고의 육류로 등극합니다. 2015년부터는 가금류의 생산량이 소와 돼지를 앞서게 됩니다.

육류별 생산량 추이. 자료 UN식량농업기구

3650년 전 쌀밭에 남은 낟알을 주워 먹으려고 인간을 처음 찾아온 닭은 이제 인류의 최대 단백질 공급원이 됐습니다. 한때 추앙받기까지 했던 닭은 현대 사회에선 그저 먹을거리에 불과합니다. 한 해 대략 700억 마리가 도축되죠.

닭은 먹이에 이끌려 인간과 교류하면서 한때는 경외와 축복의 대상으로 추앙받다가 이제는 먹힐 운명으로 태어나는 기구한 신세가 됐습니다. 지구 상 그 어떤 동물의 역사보다 드라마틱합니다.

 
추천 영상

그레거 라슨 교수

그레거 라슨 박사는 옥스퍼드대 고고학과 교수입니다. 진화생물학적 지식과 고고학 발굴조사로 다양한 동물이 어떻게 인간과 더불어 살아왔는지를 연구해왔습니다. 그는 특히 개와 돼지, 닭이 인간과 교류한 역사를 추적해 왔습니다. 개와 돼지가 동서양의 각각 다른 곳에서 따로 가축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죠. 지난 10년 닭의 기원을 추적한 그를 지난 9일 화상으로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닭의 기원을 추적하고, 닭과 인간이 초기에 어떻게 교류했는지를 밝혔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연구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현재 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고기입니다. 사람 인구보다 10배는 많을 겁니다. 이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는 사람에게 잡아먹힙니다. 몇몇 닭 애호가들이 키우는 걸 제외하면 말이죠.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저명한 생물학자 스티브 제이 굴드가 말했듯 ‘역사적 기원과 현재의 용도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닭이 처음에 유럽에 전파됐을 때 사람들은 장례를 지낼 때 닭을 같이 묻기도 했습니다. 부장품같은 의미죠. 사람들은 닭을 처음 들여온 뒤 400~500년 뒤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닭이 커지고 35일쯤 된 걸 잡아서 대규모로 먹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그러니 매우 최근의 일이죠. 가톨릭 교회에선 예수 부활을 알리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첨탑에 달아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먹는 존재로만 인식하는 건 우리 눈을 가리는 것이죠. 연구를 통해 인류의 역사에서 닭이란 동물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교류했는지를 보려고 했습니다.
닭 연구에 수십억원을 쓴다는 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면서요
여러모로 공격받았죠. 사람들은 닭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더 연구할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닭은 정말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닭이 어떻게 가축화됐고, 어떻게 처음에 교류했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완전한 미스터리죠. 닭과 인간의 교류를 연구하는 건, 당시의 인간성을 연구하는 겁니다. 닭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가 모르던 세계에 들어가 당시의 인간과 공감하는 것이죠.
왜 닭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나요
1988년 나온 아주 유명한 논문이 있었습니다. 영향력이 컸죠. 하지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증거 자료가 충분치 않습니다. 마치 텐트 폴 하나에 텐트를 세운 것과 같죠.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찾은 것들 중에는 틀리게 기록된 것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적색야계와 가축화된 닭의 뼈를 구분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이번 연구는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구분하기 힘들고 알 수 없는 자료들은 제외하고 확실한 근거를 가진 데이터만 추려서 치킨의 기원을 추적했죠. 중앙아시아나 한국과 일본에선 자료가 아예 없고요. 이건 수천조각 짜리 퍼즐을 딱 20개 조각만 가지고 만드는 거랑 같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태국의 반논왓이 가축화된 닭이 발견된 가장 오래된 지역입니다만, 추가적으로 다른 자료가 나온다면 이 역시 바뀔 수 있습니다. 쌀농사를 동남아로 전한 중국 남부가 그 후보가 될 수 있겠죠.
그렇게까지 자료가 없나요
증거를 찾는 건 정말 정말 힘듭니다. 자, 만약에 당신이 땅을 파잖아요. 혹시 고고학 발굴을 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적지를 판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작은 삽으로 땅을 파다보면 완벽한 인간 미라나 멋진 장신구가 나오고 그러면 그걸 붓으로 먼지를 털고 한다’는 식이죠. 그러다 로마 시대 모자이크같은 것도 발견하고 말이죠. 하지만 닭은 어떨까요. 닭 뼈라는 건 매우 부서지기 쉽고 지층 속에서 쉽게 뒤섞이는 성질이 있어요. 보통 현재의 것들이 지층의 윗부분에 놓이는데, 닭 뼈는 지층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뒤섞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고고학 발굴 기술은 놀랍게 발전했지만, 닭 뼈는 정말 까다롭습니다. 일단 속이 비어 있고 너무 쉽게 이동하고 섞이죠. 게다가 야생닭과 가축화된 닭을 구분하기도 힘들고 다른 새 뼈와 구분도 어려워요. 발굴 현장에서 나오는 뼈 1만개 중 하나 정도가 닭 뼈입니다. 600개에서 700개 유적지를 다 방문할 수 없으니 박물관에서 뼈 사진을 본 뒤 다른 맥락으로 검증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연구도 10년은 걸리는 작업이었죠.
닭이 처음 인간과 교류했을 때는 어땠나요. 잡아먹기 위해 키웠을까요.
키운다는 말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닭의 삶에 개입한다는 건데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우리는 마트에 놓인 치킨을 보면서 그저 뼈 위에 붙은 살덩어리라는 생각을 하고 먹을거리겠거니 합니다만,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치킨은 말라깽이 새였습니다. 뼈에 붙은 살도 적고 먹을 생각을 하기 힘들었죠. 그때는 소나 돼지를 먹었지, 닭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죠. 닭이 산업화된 육류가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닭을 보고 저걸 먹어야겠네 이런 생각은 안 했다는 거죠. 그러니 키우지도 않았죠. 닭은 쌀농사를 짓던 인간에게 이끌려 사람이 사는 지역에 들어온 새였습니다. 마치 도시의 비둘기나 하수구에 사는 쥐, 아파트의 바퀴벌레 같이 말이죠. 사람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를 보듯 그저 닭이란 동물이 근처에 사는구나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데려가서 키우거나 먹이를 주거나 하지도 않았겠죠.
닭이 유럽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어땠습니까
예를 들어 닭이 이탈리아 지역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쯤 됩니다. 그들은 이후 500년 동안은 닭을 먹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닭이 된 동남아의 적색야계는 인도의 서쪽에는 살지 않습니다. 이란이나 이라크, 유럽이나 러시아 사람들은 과거에 닭과 비슷한 새도 보지 못했습니다. 비교할 만한 새도 없었죠. 과거 유럽엔 지리적으로 아주 먼 곳에서 온 것은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외계인처럼 말이죠. 엄청나게 먼 곳에서 외계인이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오, 이거 정말 엄청난데’ 하겠죠. 닭이 이탈리아로 건너갔을 때 그나마 비슷한 게 오리나 거위였는데요, 하지만 화려한 깃털도 없고 ‘꼬끼오’하고 울지도 않죠. 사람들은 닭을 보고 ‘이거 정말 수백만 킬로미터 밖에서 온 처음 보는 놈이구나’ 생각했죠. 그때 유럽 새라고 하면 죄다 갈색이었는데, 닭은 초록색, 붉은색, 노란색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는 금세 초자연적인 힘과 연결되고, 카톨릭의 전통에서 예수 부활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외계인 같은 게 도착했는데 그걸 바로 먹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적어도 500년은 지난 뒤에야 요리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처음에 닭은 경외의 대상이었죠.
그러면 어떻게 지금처럼 큰 규모의 식품이 된 건가요
미국에서 경연이 벌어졌죠. ‘내일의 치킨’이라는 건데요, 그게 바로 치킨 산업이 지금처럼 거대해진 계기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치킨은 결코 돈 되는 아이템이 아니었죠. 당시 농부랑 얘기한다면 그들은 소나 돼지를 기본적으로 키우려고 하고, 그나마 양이나 염소를 생각하지 닭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미국에선 소규모 그룹이나 여성들이 돈을 벌려고 닭을 치기 시작했죠. 작게 키우고 돈도 조금 벌었죠. 그러다 세계 대전 이후 경연이 생겼고 백인 남자의 자본이 치킨을 움켜쥐고 돈벌이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인간과 닭의 관계가 전환되고 엇갈리는 걸 보면요, 사람들은 닭을 환영하다가 모욕하고 숭배하다가 먹어치우기도 하죠. 계란과 닭고기 그리고 깃털과 품종 선택 같은 것들에도 인간의 영향이 있고요. 이 모든 것들은 인간과 닭이 서로 정교하게 영향을 주고 받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어울렸다는 걸 보여주죠. 인간과 닭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점점 중요해지는 치킨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고요. 역사적으로 닭이 인간의 문화적, 생물적 진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정수경 PD, 이가진, 박지은 인턴    중앙일보     입력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