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골프계 우영우’ 이승민 “또 태어나도 엄마 아들로”… 엄마는 웃다 울었다

해암도 2022. 8. 20. 08:59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 우승한
자폐인 골퍼 이승민과 어머니 박지애

 

 

“당신의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릅니다.”

 

2000년 가을,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 만 세 돌 된 아이를 관찰한 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어려서, 미국 생활이 처음이라 말이 더디고 행동이 특별한 거라 믿었던 그녀는 “쇠망치로 머리통을 두드려 맞은 느낌”이었다. 정밀진단을 해보겠냐는 물음에 대답할 정신도 없이 아이를 카시트에 앉힌 뒤 자동차를 운전했다. 하늘은 눈부시도록 파란데 그녀에겐 온 세상이 암흑처럼 어두웠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절망의 시작이었다.

 

다섯 살 된 아이는 서울 독립문 근처 어린이집에 다녔다. 생일을 맞은 친구의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생일파티를 위해 아이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이가 사라졌다고 했다. 혼비백산해 달려나가니 아파트 단지 앞에서 아이가 혼자 울고 있었다. 친구 집에 들어가려는데 다른 아이들이 “넌 오지 마. 넌 바보니까 오지 마”라고 했단다. 길을 헤매느라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아이를 안았다. 절망의 터널은 끝이 없어 보였다.

 

2022년 7월 20일(현지 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 자폐 장애인 골퍼 이승민(25)이 물세례를 받으며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 박지애(56)씨는 울지 않았다. “울고 말고 할 정신이…. 기뻐도 힘들어도 저에겐 울 여가가 없었어요. 승민이와 산다는 건 매일매일이 전쟁이라 이거 하나 막고 저거 막는데 급급하지, 내 감정에 치일 여유가 없으니까요. 우는 대신 이를 악물고 살았죠. 긴장이 풀릴까 봐(웃음).”

 

미국골프협회(USGA)가 올해 창설한 장애인 US오픈에서 초대 챔피언이 된 뒤 귀국한 이승민 선수와 어머니 박지애씨를 지난 16일 수원 컨트리클럽(CC)에서 만났다. 우승을 축하한다고 하자 이 선수가 수줍어하며 “가…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우승한 날 숙소에서 짐을 쌀 때 대통령 축전을 받고 놀랐다는 승민씨 모자는, 광복절 경축행사에도 초청받았다. 박씨는 “우승한 뒤 알아보는 사람도 많고 축하 문자도 받으면서 승민이가 요즘 많이 웃는다”고 했다.

 

우승 후 ‘골프계 우영우’란 별명을 얻은 이승민과 어머니, 그리고 두 사람이 ‘형’이라 부르는 윤슬기(42) 캐디 겸 코치는 US오픈 3라운드 18번홀의 두 번째 샷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세리의 맨발 샷’ 못지않은 스토리가 있었다.

키 183㎝, 몸무게 78㎏의 건장한 체격이지만 이승민 선수는 엄마 박지애씨 앞에선 어린아이다. 드라마 속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가 김밥만 먹는다면 승민씨는 가리는 음식이 없단다. 골프선수인 아들 때문에 날씨 전문가가 됐다는 박씨는 “광복절이 지났으니 이제 죽을 듯한 더위는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어떡하지? 어떡하지?

 

-3라운드 18번홀이 가장 큰 고비였다고 하던데요.

윤슬기(이하 윤): “우승을 다투던 스웨덴 펠리스 노르만 선수와 동타였는데 그 선수는 페어웨이에 공을 잘 떨어뜨린 상태였고, 승민이는 커다란 나무 아래, 그러니까 트러블 상황에 놓여 있었죠. 승민이가 당황하면 같은 말을 반복해요. 공을 칠 생각은 안 하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고만 있길래 제가 소리를 질렀죠. ‘승민아, 정신 차려!’”

이승민(이하 이): “형(윤슬기 캐디)이 소… 소리를 쳐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확 깨서 혀… 형이 일러준 대로 (공이 가야 할) 길을 딱 보고 길게, 세게 쳤어요. (그러자 공이) 그린 앞에 다서여섯 발? 파… 파를 칠 수 있게 된 거죠.”

박지애(이하 박): “실수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파로 잘 막아서 연장전으로 간 거죠. 똑바로 치면 나뭇가지를 맞고 지나가는 거라 그것까지 계산해서 조금 더 길게 치라고 슬기형이 주문한 건데 ‘어떡하지’만 연발하고 있었으니 속이 터졌을 거예요(웃음).”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여섯 번 외쳤다고요.

윤: “6번이 아니라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중얼거렸어요. 승민이 같은 자폐인들이 곧잘 딴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제시어를 준 거죠. ‘할 수 있다’를 되뇌이면 다시 집중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다’로 유명한 박상영 선수 펜싱 영상도 여러 차례 보여줬어요.”

박: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가 법률 얘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고래 얘기로 넘어가잖아요. 승민이도 골프 치다가 순간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형이 정신을 다시 잡아오는 용도로 만든 거예요. ‘정신을 차리자!’도 있어요. 형이 ‘정신을!’ 하면, 승민이가 ‘차리자!’ 외칩니다(웃음).”

-당황하거나 불안할 때 말고도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나요.

박: “우영우가 고래라면 승민이는 개미예요, 그것도 불개미. 특히 전지훈련 가는 베트남에는 페어웨이에 개미들이 곧잘 집을 짓는데, 그걸 발견하면 공은 쳐다도 안 보고 쭈그려 앉아 개미만 관찰합니다.”

-자폐인들이 집중력이 높다고도 하던데요.

윤: “순간 집중력, 몰입력이 아주 좋아요. 트러블 상황이라도 정확히 떨어져야 하는 위치에 떨어져야 파세이브 할 수 있는 원포인트 자리가 있는데 그걸 딱딱 쳐내는 걸 보면 천재성을 느끼죠.”

-이번 대회 중에 최경주 선수도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던데요.

이: “휴대폰 영상으로, 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박: “상대 선수는 버디도 잘 들어가는데, 승민이는 경기가 뒤로 갈수록 어려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 해주신 것 같아요.”

-우승 트로피는 어디 있나요?

이: “지… 집에.”

-승민씨 방에요?

이: “아니, 마루에.”

박: “순은이라 매일매일 잘 닦아서 보관하고 있어요. 순회배 대회라 1년 뒤 돌려줘야 하거든요. 우승한 선수의 이름을 새겨서 1년 동안 보관하다가 다음 해 우승한 선수에게 전달하는 트로피입니다. 승민이가 시합 때 썼던 모자와 드라이버는 미국골프협회 박물관에 기증하고 왔습니다.”

지난 7월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 우승한 이승민 선수가 물세례를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 /USGA

 

◇해병대 출신 캐디를 만나다

 

이승민은 중학교 1학년 때 골프에 입문했다. 어린이채널이 아니라 골프채널을 틀어놓으면 조용해지는 아들을 보고 박지애씨가 자폐 치료의 일환으로 골프를 떠올렸다. “그때가 타이거 우즈 전성기였는데 종일 우즈 경기만 보고 있더라고요.” 아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소망을 말한 것도 골프였다. “고… 공이 멀리, 하늘로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다행히 아이에겐 재능이 있었다. 골프학과가 있는 신성중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해 김종필 프로 등에게 배웠다. 일반 선수들 사이에서 승민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었지만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2014년 KPGA 프로 자격을 획득한 데 이어, 발달장애가 있는 선수로 처음 2017년 한국골프협회(KPGA) 정회원이 됐다. 윤슬기 캐디와 만난 건, 정글이나 다름없는 프로 세계에 진입한 뒤 길을 잃었을 때였다. 처음 도전한 중국 프로골프 투어에서 처참히 무너진 이승민 선수를 다잡아 일으켜준 사람이 ‘해병대 출신 슬기형’이었다.

-이번 US오픈에서 우승하고 귀국한 다음 날 새벽 6시부터 연습을 했다면서요. 쉬지도 않고.

윤: “US오픈으로 시합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승민이가 연습할 때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된 사람이 이달 초 PGA 윈덤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해 화제가 된 김주형 선수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요?

윤: “재작년 군산 오픈에서 우승한 김주형 선수가 바로 다음 날 새벽 6시에 수원CC에서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승 후 인터뷰 요청이 너무 많아지니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새벽에 온 거래요. 승민이가 그 말을 같이 들었어요. ‘너도 우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었더니 ‘나도 6시부터 연습하겠다’고 하더군요.”

박: “2019, 2020년 그 무렵이 승민이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다섯 번 도전한 끝에 KPGA 정회원이 되고, 세미 프로에서 투어 프로 선수로 격상되면서 큰 산을 넘었다 생각했는데, 그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전쟁이더라고요. 우리가 넘은 건 언덕이었고, 저 위로 높고 높은 에베레스트가 솟구쳐 있는 거죠. 중국 투어에서 실력을 절감한 뒤 아, 이제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건가 했습니다.”

-성적이 처참했나요?

윤: “바닥이었죠. 소위 말하는 입스(yips·운동 선수들의 불안증세)가 승민이에게 왔어요. 쉬운 샷도 공이 제멋대로 날아가는가 하면, 티박스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생각했죠.”

-지적 장애를 가진 선수를 가르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윤: “승민이 지능이 다섯, 여섯 살 수준이에요. 하루 두세 시간 몸 풀기 정도로 연습하고 가던 아이에게 프로선수의 생활을 가르치는 게 가장 힘들었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6시까지 골프장에 와서 연습하고 오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마사지 받는 일상을 반복해야 하니까요.”

-연습하다 도망친 적도 있다면서요.

 

윤: “드라이버샷을 교정하기 위해 하루 종일 드라이버만 치게 했더니 못 하겠다고 화를 내면서 뛰쳐나가더라고요. 힘든데 왜 자꾸 세게 치라고만 하냐고 따지면서.”

이: “그땐 저, 정말 싫었어요. (공이) 삑사리 나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박: “너무 힘드니까 승민이가 한번은 ‘엄마, 나 알바 할까?’ 그래요. 알바로도 돈 벌 수 있다는 걸 알고요. 그래서 ‘알바 하는 것도 좋은데, 가게 사장님이 너처럼 느리게 일하는 아이를 좋아할까? 시키는 일을 빨리빨리 못해서 잘리면 어떡하지?’ 했더니 계속 골프를 치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경찰서에 간 적도 있다면서요.

윤: “화가 나면 승민이는 골프채를 휘둘러요. 그 분노와 폭력성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승민이를 데리고 동네 파출소에 갔어요. 네가 골프채를 휘두르면 형은 너를 경찰서에 고소할 수밖에 없다면서(웃음). 파출소 소장님도 폭력과 위협이 왜 범죄가 되는지 설명해주시니 승민이가 알아듣더라고요. 그러고 며칠 뒤 저와 사소한 언쟁이 생겼는데 내 목소리가 높아지자 승민이가 갑자기 ‘쉿! 조용히 해. 경찰 와, 경찰’ 하더라고요, 하하!”

-허인회, 안신애, 허윤경 프로 등 유명 선수들 캐디로 16년 동안 활약하셨던데, 굳이 장애가 있는 승민씨를 전담한 이유가 있을까요.

윤: “전담 코치가 되기 전, 승민이를 필드에서 처음 본 건 중2 때인데, 아이가 자기 꿈은 마스터스 어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마지막 라운드 18번홀을 걸어나오면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뭉클했죠. 그 꿈을 이뤄주고 싶었습니다.”

-장애인 선수들끼리면 몰라도 일반 선수들과 그게 가능할까요? 예선 통과도 하늘의 별따기일 텐데.

윤: “승민이 같은 자폐인 선수는 뭔가를 시키면 핑계 대지 않고 될 때까지 반복하며 노력하는 집념이 있어요. 100㎞의 길을 시속 100㎞로 1시간 만에 갈 거리를 시속 5㎞로 이틀에 걸쳐서 가지만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꾸준히 연습하고 또 연습죠. 그런 장점을 활용하면 정말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의사 소통은 잘되던가요.

윤: “승민이와 대화가 온전히 되기 시작한 게 불과 1년이 안 돼요. 모두가 보라색이라고 해도 승민이는 흰색이라고 우기는 게 장기죠(웃음). 바로잡아주려고 하면 고집을 피우다 화를 내고 폭력성을 보여요. 승민이가 그렇게 된 건 어머니 잘못도 있어요. 주위 사람들 시선이 날아드니 그 상황을 빨리 모면하려고 아이를 달래기만 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계속 아이와 싸우면서 가르쳤어요. 골프 동호회에 데리고 다니며 낯선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법, 남을 배려하는 법도 가르쳤죠. 덕분에 사회성은 많이 좋아졌는데, 대신 ‘막가파’일 때의 천재성이 줄어든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하!”

-엄마 입장에서는 포기하고 싶을 때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박: “승민이가 공을 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요! 주변에선 장애인이 이런 섬세한 운동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계속 말려요. 라운딩할 때 속도도 느리고 다른 선수들 라인을 밟으며 방해만 하는데 대체 왜 데리고 나왔느냐며 대놓고 항의하는 분도 있었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왜 그만두지 않았나요.

박: “아이가 아프고 병들어서 스스로 놓을 때까지는 내가 먼저 짐을 싸진 않으려고요. 기름이 다 떨어져가는 자동차처럼 아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늘 조마조마하지만, 아직은 자기가 좋아서 가는 상황이라 기다리고 있어요.”

윤: “승민이 어머니를 보면 늘 안타까워요. 장애인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을 25년간 견디며 사는 거잖아요. 늘 이를 악물고 다니시는데 저러다 죽겠다 싶은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승민이는 제게 맡기고 어머니도 생활을 좀 가지세요, 했지요. 바로 후회했지만요, 하하!”

윤슬기씨가 이승민 선수의 퍼팅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모습. 승민씨는 “형은 가장 무섭지만 내게 힘을 주는 분”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여기가 끝이 아닐 겁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대개의 부모들처럼 박지애씨도 처음엔 아이의 장애를 숨기고 싶었다. “조금 독특한 것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야”라며 부인했다. 아들의 장애를 알리기로 마음먹은 건 외교관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을 때였다. 특수학교를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만난 심리학자가 “부모가 장애를 인정하면 아이는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지만, 부모가 숨기고 감추려고만 하면 아이는 그때부터 지옥의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아이의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만 딱 비교하라고 했죠. 자꾸 미래를 보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질 거라면서. 이후 저의 철판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웃음).”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을 텐데요.

박: “어릴 땐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 돼 전공을 하진 못했어요. 꿈이라기보다는 30대 가정주부가 사는 대개의 삶, 40대, 50대 엄마가 사는 삶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걸 못해봤어요. 매일 아침 눈뜨면 승민이의 삶을 같이 살아야 했으니까요. 나도 모르게 ‘이건 사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중얼거릴 때도 많았죠. 여기에 하나의 문제만 더 얹혀졌더라도 못 살았을 거예요. 남편이 헛짓거리를 했거나 서로 반대의 길을 가자고 했거나,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면 저도 어떻게 했을지 몰라요.”

-남편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요?

박: “너무 바쁘니까. 둘 중 하나는 맨정신으로 살아야 하니, 10가지 나쁜 일이 있다면 9가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최근 들어 발달장애 가족이 삶을 포기하는 사건이 늘고 있습니다.

박: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저라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승민이가 말 안 듣고 속 썩이면 ‘너랑 나랑 손잡고 아파트 옥상 올라가는 거지 뭐’라고 윽박지를 때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지금 당장 너무 캄캄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한 번만 더 가졌으면 좋겠어요.”

-승민씨는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박: “경제적 여건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절망감의 깊이는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아이를 골방에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사회로 나가게 해서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았고,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살았죠(웃음).”

-사회에 나와서 오히려 상처받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박: “열 분 중 한 사람은 이해하고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을 거예요. 요즘도 주치의 선생님 만나러 1년에 두 번 병원에 가는데, 대기실에 있는 어린 장애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우리 승민이도 저랬었지 싶어요. 승민이는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얼마 전엔 외할머니와 운전면허 문제집을 공부해 자동차 면허도 땄고요. 일본 히라가나, 가타가나도 모양 그대로 외워서 일본 투어 때 식당에서 까막눈인 저희 대신 메뉴판을 보고 주문했지요. 느리지만, 아이 스스로 계속 도전해갈 수 있는 기회를 하나씩 만들어주려고요.”

윤: “발달장애인의 90%가 집에 있다는 건 그들의 엄마가 육아에서 평생 졸업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골프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정말 좋은 운동이지만 선수 하나를 키우는 데 몇 억이 든다는 말처럼 비싼 종목이지요. 그런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걸 우리 사회와 기업이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승민이를 7년째 후원해주고 있는 하나은행처럼요. 예를 들어 골프 남자 구단이 22개가 있는데 이들이 구단마다 장애인선수를 2명씩만 고용해줘도 장애인 선수들만의 리그가 생기고, 골프를 배우려는 장애인들이 늘어날 겁니다. 골프 말고도 스키, 스케이트처럼 개인 운동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으면 해요. 승민이와 제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도 장애아를 대상으로 한 골프 아카데미를 만들어 무료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승민이에게 늘 말하죠. 네가 반드시 성공해서 장애아들의 타이거 우즈가 되라고!”

인터뷰 중 ‘엄마의 꿈’이라는 말에 꽂힌 승민씨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의사가 되려고 했어?” “응. 근데 공부를 못해서 의사는 못 됐어. 대신 승민이 엄마가 됐지.” 박지애씨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다시 태어나도 승민이 엄마가 되고 싶은가요?” 당황한 그녀가 웃었다. “글쎄요, 결혼도 안 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승민씨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이 되고 싶어요?” 이 사랑스러운 청년은 주저하지 않았다. “네… 엄마 아들로 태어날 거예요.”

<아무튼주말>'골프계 우영우'로 불리는 이승민 선수와 어머니 박지애씨가 지난 16일 수원컨트리클럽에서 손을 잡고 웃는 모습. 스물다섯살 건장한 청년이지만 이씨는 엄마만 보면 좋아서 해맑게 웃었다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