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개국 공동 연구팀의 연구 결과, 사람의 뇌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전이인자(transposons)가 문어 뇌에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photo 뉴시스
문어는 '무척추동물계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지능이 높다. 지금까지 300건 이상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전문가들은 문어가 '지각이 있는 생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무척추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문어가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인간의 뇌와 같은 '움직이는 유전자'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게 그 답이다.
문어 뇌에도 '학습 DNA' 존재
문어는 보통 동물의 구조와는 너무 다르다. 동물은 대개 좌우 대칭형이지만 문어는 머리-발로 끝나는 방사형이다. 문어·오징어·낙지 등을 두족류라고 부르는 이유다. 또 특이하게 심장이 3개인 데다 머리와 다리 사이에 뇌가 위치한다. 8개의 다리에는 1000개가 훨씬 넘는 빨판이 달려 있고, 그 하나하나를 손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이상한 구조를 가진 문어는 지능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런데 최근 똑똑한 문어의 뇌 능력이 동물행동학계에서 더욱 이슈가 되고 있다. 인간과 문어의 뇌에 공통 유전자가 있다는 특징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고등과학원(SISSA)을 비롯해 독일, 스웨덴, 인도,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 7개국 연구진으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팀의 연구에서다.
연구팀은 사람의 뇌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전이인자(transposons)가 문어 뇌에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이인자는 유전체(게놈) 내에서 위치를 옮겨 다닐 수 있는 유전자(DNA) 조각이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직접 움직이는 특성 때문에 '점핑 유전자(jumping genes)'라고도 한다. 인간의 게놈 가운데 무려 45%가 전이인자로 구성돼 있는데, 스스로 복제하며 염색체 안의 한 위치에 자신을 삽입한다.
전이인자는 유전병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이인자가 새로운 위치로 삽입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이인자들은 세포의 방어 작용에 의해 활성이 억제되어 있거나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잃어 활동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다만 일부 전이인자들이 활성화되어 이따금씩 위치 이동이 일어나면서 종의 분화와 진화, 유전자 발현 조절 등 유전체의 다양성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도록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조절 기능이 탁월하다.
전이인자는 1956년 미국의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턱(Barbara McClintock)이 옥수수 염색체를 연구하던 중 발견했다. 옥수수 유전자의 구조와 위치를 변화시켜 유전자의 기능 또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발견하고, 이러한 형태의 유전자 물질을 '조절인자'라 명명했다. 이 공로로 그녀는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전이인자 중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긴 반복 배열 핵 성분(LINE·Long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LINE 전이인자는 학습·기억 같은 뇌의 인지능력과 연관 있다. 우리 뇌에서 학습 과정을 관장하는 해마에서 이 LINE 전이인자가 많이 발견되는데 문어에게서도 이것이 발견된 것이다. 문어 유전자에서 전이인자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인간의 해마 역할을 하는 수직엽(vertical lobe)이라는 부분에 많이 존재한다. 연구팀은 문어 뇌의 수직엽에서 LINE 전이인자의 매우 강력한 이동 신호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기술(sequencing)을 활용해 문어 가운데 가장 흔한 종인 참문어(Octopus vulgaris)와 캘리포니아 두점박이 문어(Octopus bimaculoides)의 뇌 게놈을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종의 게놈 전이인자가 비슷하다는 것과 매우 풍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이인자는 과거의 흔적에 불과할 뿐 비활동적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두 종의 문어를 통해 그 활동이 여전히 세밀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레모 산게스(Remo Sanges) 교수는 "두 문어의 뇌에서 활동하는 LINE 전이인자의 발견은 이 요소들이 복제와 붙여넣기 기능을 넘어 인지능력과 같은 특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은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고 말한다.
문어는 위장술의 달인
인간과 문어의 뇌의 유사성은 놀라운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대표적인 예다. 수렴진화는 계통 분류학적으로 서로 다른 생물종, 다시 말해 거리가 멀리 떨어진 종이라도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같은 기능을 진화시킬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문어의 뇌는 기능적으로 포유류의 뇌와 유사하다. 따라서 LINE 전이인자는 앞으로 지능의 진화 연구에 도움을 줄 매우 흥미로운 후보라는 게 산게스 교수의 설명이다.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영국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BMC 생물학(BMC Biology)'에 발표되었다.
문어는 유전자가 인간보다 무려 1만개나 더 많고 뇌구조도 복잡하다. 또 우리의 눈과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하게 영상을 받아들이는 망막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망막 덕분에 문어는 감금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는 데 강하다. 교묘하게 어항의 작은 틈새를 빠져나와 물탱크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문어는 보통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한 번 학습하면 기억해 뒀다가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쉽게 해결한다. 환경을 활용할 줄도 알아 은신할 때 전략적인 행동을 보인다. 주변 환경에 따라 피부색과 무늬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문어가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통하는 이유다.
문어 피부는 독특한 색소세포와 이를 통제하는 근육들이 포함된 복잡한 내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피부의 근육을 통제하여 섬세하게 피부의 질감과 색상을 다채롭게 변화시킨다. 단순히 색만이 아니라 피부의 질감까지 바꾸어 완벽하게 위장하는 능력은 자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도의 기능이다. 하지만 구체적 메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해안에 서식하는 '인도네시아 문어(Octopus Marginatus)'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평상시 모습과 달리, 천적이 나타나면 바다 밑에 널려 있는 야자나무 열매인 코코넛처럼 위장해 걸어다닌다. 두 다리로 밑바닥을 걸으면서 여섯 개의 다리로 공처럼 몸을 말아 마치 코코넛처럼 움직인다. 도망치는 속도가 다리를 모두 사용해 이동할 때보다 훨씬 빠르다. 문어의 '두 다리로 걷기' 위장은 '무척추동물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상식을 깬 셈이다. 살아남으려는 문어 위장술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주간조선 입력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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