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이 만난 사람] ‘한 우물 선비’ 인생...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1937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올해 만 84세인 송복(宋復)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표 지식인이자, 현대판(版) 선비이다. 그는 평생 외부 관직(官職) 제의는 물론 교내 보직(補職)까지 모두 사양하고 글쓰기와 강의, 연구에 힘써 왔다.
그의 ‘한 우물 파기’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같은 고향 출신 선배인 박영식 연세대 총장이 재임 시절(1988~92년), 그를 부총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송 교수가 몇 달 동안 부총장실로 출근하지 않는 바람에 임명 자체가 무산됐다. 그는 만 80세이던 2017년 1월, 위기에 처한 한국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한국자유회의(Korea Freedom Congress)’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행동하는 ‘실천적 지성’의 모습이었다.
◇60년 넘게 ‘현재진행형’인 실천적 지식인
송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59년 9월, 월간 <사상계(思想界)>의 전국 대학생 논문현상 모집에 ‘한국 지식인의 사명’이란 글로 당선됐다. 62년 전 자신이 쓴 논지(論旨) 그대로 올곧은 지식인의 삶으로 일관하는 그를 이달 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 송 교수는 아직도 휴대전화를 소유조차 하지 않고 있어, 기자는 자택 전화 및 부인 휴대전화 등으로 그와 연락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
“매일 아침 4시30분쯤 일어나 4개 신문을 정독한다. 가치(價値)있는 기사는 스크랩했다가 또 읽는다. 2016년 이후 매년 2편씩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2019년 말 서애(西厓) 류성룡을 연구하는 ‘서애학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 지금까지 논문과 책은 얼마나 냈는가?
“조직의 과두제(寡頭制) 속성을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조직과 권력>을 비롯해 단독 연구서 8권과 120편의 학술 논문을 썼다. 교과서는 한 권도 쓰지 않았다. 공저 등을 합하면 30권 가까이 된다.”
대표 저서를 묻자 송 교수는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2003년)와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2007년) 두 권을 꼽았다. 전자(前者)는 ‘유교사회학’ 전문서이고, 후자(後者)는 임진왜란 당시 재상 류성룡(柳成龍)의 549개 상소문 분석 등을 바탕으로 쓴 조선조 리더십 연구서이다. 두 권 모두 한문(漢文) 각주(脚註) 등을 빼곡이 적은 학술서적이지만 1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만 어떻게 선진국이 됐는가 평생 연구”
1975년부터 2002년까지 연세대 교수로 교단을 지킨 그는 정년퇴임후 석좌교수로 특별초빙돼 8년동안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더 가르쳤다.
- 입각(入閣)과 정치권 영입 제의, 학내 보직을 모두 거절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교수가 되려면 적어도 10대 1이 넘는 경쟁을 거쳐야 한다. 즉 뽑히지 못한 다른 인재의 불운과 희생이 있다. 그 사람의 몫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한 우물을 파야하지 않나. 그리고 내가 오직 잘하는 게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이기도 하다.”
- 학자로서 평생 관심사는 무엇인가?
“후진국이던 우리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거의 유일하게 어떻게 선진국이 됐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 이유를 우리가 효과적인 발전 방식과 성과 방식, 대본(大本) 방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발전 방식은, 도시와 지방간의 ‘지역 격차’, 화이트칼러와 노동자간의 ‘소득 격차’, 경공업과 중공업 간의 ‘산업 격차’ 같은 세 가지 격차를 활용한 게 적중했다.”
◇“‘기업천하지대본’이 한국 경제 성공 비결”
- 가장 큰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
“1000년 넘게 나라의 대본(大本)이던 농업을 버리고 ‘기업’을 가장 중요한 대본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기업천하지대본(企業天下之大本)’을 최고 국정 지표로 삼고 기업 키우기에 신명(身命)을 바쳤다.”
송 교수는 “1965년 2월부터 서거할 때까지 박 대통령은 매월말 청와대나 중앙청에서 2시간씩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열었고, 1966년부터는 매달 월간경제동향 보고회의를 개최하는 등 민간 기업대표들이 참석한 민관 합동회의만 148차례 직접 주재하며 그들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수출진흥 확대회의’와 ‘월간경제동향 보고회의’는 박 대통령이 한국경제의 대질주를 진두지휘하는 ‘쌍두마차’ 사령탑이었다. 박 대통령은 기업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수출 절차 간소화, 금융 지원 같은, 회의에 참석한 기업의 건의를 대부분 일사천리로 해결해줬다.
◇“문재인 정권은 30년 만에 가장 후진적...아마추어보다 못해”
- 우리나라의 발전이 ‘민간 기업의 힘’ 덕분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기업천하지대본’을 선택한 게 결정적이었다. 대기업들이 초기에는 정경 유착과 부정 비리가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봐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출범후 줄곧 민간 기업을 억압하고 옥죄며 공기업과 공무원만 늘리고 있다. 공무원 수 급증은 국가발전의 위험신호이다.”
-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1987년 체제 출범후 30년 만에 가장 후진적인 정부로 아마추어 보다 못하다. 국민들의 요구와 시대 정신과 동떨어진 채 1980년대 운동권 이념과 머릿 속에서 정책을 펴고 있다.”
- 진보 정권의 한계 때문인가?
“지금 정권은 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보수와 진보의 공통점은 법치(法治)인데, 문재인 정권은 일방적인 탈원전 강행에서 보듯 법을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집행한다.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 정권이다. 법, 제도를 무시하고 친소(親疏) 관계와 호오(好惡) 감정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패거리 문화이자 중세 국가로의 퇴행이다. 지금 정권은 진보가 아닌 수구(守舊) 좌파일 뿐이다.”
◇“역사는 지그재그로 발전...조급하지 말아야”
- 한국 기업과 경제는 1~2류이지만, 정치는 아직도 4류 수준이다.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사상·의식 같은 비(非)물질문화가 물질 문화의 변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는 문화 지체(cultural lag) 현상이 다른 나라보다 우리 사회에서 크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탓이 크다고 본다.”
- 사회 지도층의 책무인 ‘노블레스 오빌리주(noblesse obilige)’도 우리나라는 미미하다.
“역사는 지그재그로 발전한다. 너무 조급하게 볼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서양과 같은 신사(紳士) 문화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소매치기가 사라졌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물건을 놓고 내려도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가질 않고 신고해 찾아준다. 예전과 견줘보면 장족(長足)의 발전이다.”
송 교수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우리나라는 중세 사회였다. 이후에도 6.25 전쟁으로 나라가 잿더미가 돼 제대로 된 근대와 현대의 ‘전통’이 없었다. 본격적인 근대의 출발은 1960년대부터이니 고작 두 세대(약 ·60년)가 흘렀을 뿐이다. 영국, 프랑스에서도 노블레스 오빌리주는 300여년 걸려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00년은 걸린다고 보면 30~60년후인 다음다음 세대에는 노블레스 오빌리주가 꽃필 것으로 기대한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생명선 끊어”
- 한국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자유(自由)’이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더 영리하다. ‘자유’를 주면 유대인 보다 더 똑똑하고 더 잘한다. 인구 500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한 것이나 문화, 스포츠 등에서 세계 최고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룬 게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가 북한과 다른 나라가 된 가장 큰 비결도 ‘자유’이다. 자유는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이자, 개개인의 생명선(生命線)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헌법 조항의 ‘자유민주주의’ 부분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은 민주주의를 삭제하자는 것이다. ‘자유없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생명선을 끊는 폭거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몸에는 생리적으로 ‘자유의 DNA’가 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200자 원고지 5매 남짓한 분량의 선언문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8차례 나온다. 1980년대 넥타이 부대도 시위 중 ‘자유’를 가장 많이 외쳤다. 한국 지식인의 양보할 수 없는 책무는 이 자유를 지키고 꽃피우는 일이다.”
-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 일류국가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세계적 기량을 지닌 우수한 인재들이다. 자원도 없고 땅도 좁은 우리의 유일한 생존방법은 초일류 인재 양성이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 사립대학교에 완전한 교육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면 사립대학 스스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세계적인 대학과 고급 인재 양성도 기대 이상으로 가능할 것이다.”
- 하나 더 꼽는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계속 키워야 한다. 세계 14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만 선진국이 된 것은 기업을 키웠고, 이들이 세계 1위가 된 덕분이다. 민간 기업이 맘껏 창의와 자유,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경제도 성장하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들도 생겨난다.”
◇“5%만 공적의식 가지면, 그 나라 희망있어”
-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영국의 세계적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Toynbee) 박사는 ‘전체를 위하여, 공(公)을 위하여 자기희생하는 이가 총인구의 5%만 있는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5% 희생설’을 주창했다. 이를 한국 현실에 대입하면, 우리나라 5000만명 가운데 5%인 250만명이 공적(公的)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희망은 있다.”
소년 시절 고향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한 송 교수는 부인인 서예 작가 월정(月亭) 하경희 전 배화여대 교수와 함께 1996년 ‘논어(論語) 글귀전’, 2013년 ‘맹자(孟子) 글귀전’을 각각 열 정도로 서예와 동양 고전에 조예(造詣)가 깊다.
◇ “중국은 보편 가치 없는, 폭압적인 나라”
- 중국 고전을 오래 천착(穿鑿)하셨는데, 세계 1등 국가를 목표로 돌진하는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기나긴 중국 역사에서 중국은 중국 백성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함께 수용하는 보편적 가치를 가져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유교적 이상(理想)과 엄격한 의례(儀禮)가 있었어도 현실은 철저히 폭군적이고, 폭권적이며, 폭압적이었다.”
그는 “단적으로 <맹자>에는 군주들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어먹게 한다(率獸而食人·솔수이식인)’는 구절이 수 없이 많이 나온다. 모택동(毛澤東)과 명(明)태조 주원장(朱元璋) 같은 중국의 역사적 인물은 모두 살인(殺人)의 귀재들이었다”고 했다.
- 중국이 세계적 리더 국가가 되기 힘들다는 얘기인가?
“중국 지도자들 누구도 보편적 가치를 말하지 않고, 그것이 내면에 내재화되어 있지도 않다. 중국의 경제력이 아무리 세계 1위가 돼도, 그것은 몸통만 비대하고 근육만 두터워진 것일 뿐이다.”
◇“독서와 사고의 깊이 얕은 한국 지식인들”
- 우리나라 후배 지식인들에게 당부한다면?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독서와 사고(思考)의 깊이가 얕은 게 아쉽다. 특히 우파 지식인들이 너무 책을 읽지 않는다. 독서는 사고를 심화하고, 품격있는 사회, 제대로 된 지식인을 만드는 통로이다. 1866년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의 <서양사정>은 20만부 팔린 반면, 1895년 유길준(俞吉濬·1856~1914)의 <서유견문>은 500부 팔렸다. 110년 전 조선의 망국은 제대로 된 지식인이 없었고, 나라 전체의 지력(知力) 싸움에서 일본에 완패한 탓이다.”
- 학자로서 가슴에 새겨오고 있는 말이 있다면?
“<논어> 태백(泰伯)편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이다. ‘학문의 길은 무겁고 길다. 진실을 임무로 삼으니 무겁지 않겠는가. 죽어야 끝이 나니 멀지 않겠는가’라는 구절이다.”
송의달 선임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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