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미국 최고 요리사 회고록에서 뽑은 ‘성공의 규칙’

해암도 2021. 10. 29. 05:27

[프리미엄][공복 김선생]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 데이비드 장
‘인생의 맛 모모푸쿠’ 국내 출간

 

데이비드 장은“셰프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존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데이비드 장이 출연한 넷플릭스 다큐‘어글리 딜리셔스’중 한 장면. /넷플릭스

 

 

데이비드 장(44·한국명 장석호)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요리사입니다. 2004년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연 작은 누들 바 ‘모모푸쿠(Momofuku·桃福)’로 비평가들과 미식가들을 동시에 사로잡으며 ‘스타 셰프’가 됐죠.

 

‘외식업계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4차례 수상했고, 2008년 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코’는 미쉐린 별 2개를 받았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모모푸쿠는 이제 뉴욕·LA·라스베이거스·토론토 등에 20여 개 식당·카페·바를 운영하는 거대한 외식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넷플릭스 다큐 ‘어글리 딜리셔스’ 등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연예인 뺨치는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고 있죠.

 

뉴욕타임스는 장씨를 “미국인이 먹는 방식을 바꾼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2018년 그를 인터뷰했는데요, 뉴욕타임스의 평가를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미국에서는 맛있고 몸에 좋으면 비싼 음식, 아니면 싸구려로 양분합니다. 모모푸쿠는 음식이 건강하고 맛있으면서도 비싸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그것을 동양 음식에서 찾아낸 겁니다.”

 

장씨가 쓴 회고록 <인생의 맛 모모푸쿠>(푸른숲)이 최근 국내 출간됐습니다. 회고록은 잘 나가는 셰프의 눈부신 성공담이리란 예상을 깹니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정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을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겸손해 보이려고 이런 말을 한 게 아닙니다. 특출한 재능도 없고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해 유명하지 않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 요리업에 도전하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어차피 망할 것, 하고 싶은대로 해 보기나 하자!”며 손님이 아닌 친구에게 만들어 먹일 법한 음식을 기대 없이 내놓았죠. 그런데 정말 예상치 못하게 호평을 받으며 스타 셰프에 등극했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글로 풀어냅니다.

 

꽤 재미난 책이라 음식에 별 관심 없더라도 읽어볼만 한 자서전입니다만, 책의 마지막에 있는 부록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한 서른세 가지 규칙’은 요리사 지망생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더군요. 특히 공감한 규칙 몇 가지를 뽑아서 소개합니다.

 

◇요리학교 가지 마라

‘요리학교가 제공하는 시나리오는 레스토랑의 현실과 전혀 다르다. 현실 세계에서는 다섯 명이 한 스테이션에 달라붙어 이해심 많은 손님을 대접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요리학교는 커리큘럼만 거치면 진짜 셰프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파는 사업체다.’

 

장씨는 대신 ‘요리학교보다 일반 대학교를 가라’고 권합니다. ‘요리학교는 요리사를 배출한다. 셰프가 되고 싶다면 요리보다 더 넓은 세계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아는 동시에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수학과 과학도 알아야 한다. 역사는 물론이다. 양서를 읽어왔다면 도움이 된다.’

 

◇어떻게든 원하는 일자리를 손에 넣어라

‘일터를 고를 때에는 나의 기술과 능력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레스토랑을 목표로 삼아라. 레스토랑에서 여러분을 뽑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꼭 일하고 싶은 곳이라면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철저하게 준비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는 ‘모든 게 미장 플라스다’라고 말합니다. ‘미장 플라스(mise-en-place)는 서비스 동안 필요한 모든 요소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범위를 넓혀보면, 미장 플라스는 철저한 준비를 뜻한다.’

 

◇시간을 다르게 쓰는 버릇을 들여라

‘가장 먼저 출근하는 직원이 되자. 그만큼 진지하게 일한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지만, 특히 시작 전에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어 좋다.’

 

◇몸으로 배우자

‘쥐뿔도 모르더라도 모든 일에 자원하자.’ 장씨는 주방장이 자신이 모르는 음식을 만들라고 명령했을 때의 일을 소개합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기운차게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셰프”라고 답했다. 조리대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나는 그레몰라타의 재료도 조리법도 몰랐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부엌으로 돌아가 셰프에게 레시피를 물어보았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는 나의 태도와 열정적인 투지를 높게 샀다. 나는 모모푸쿠의 요리사들이 그런 태도를 보일 때 기쁘다.’

 

◇어려운 길을 골라가라

‘지하에서 식재료 밑준비를 하다 보면 일을 하는 길이 여러 갈래임을 깨닫는다. 물론 그 가운데는 셰프가 지시한 것보다 쉬운 요령도 있다. 그에 따라 일을 한다면 가장 똑똑한 요리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더 힘든 길을 택한다. 왜? 그래야 손님이나 셰프를 속인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쉬운 길을 택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이전의 성공을 내던져라

힘들게 주방 최고 자리에 오른 셰프에게 장씨가 주는 첫 조언입니다. 그는 ‘셰프로서 가장 위험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합니다.

 

‘여러분이나 직원들이 유명세나 호평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출근한다면 망했다. 지나친 자기의식과 안주하려는 자만심은 셰프의 적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인생의 걸림돌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이 쉬워진다는 느낌이 들면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는 ‘성장은 실수하지 않는 날 멈춘다. 실수에서 배우지 않는 게 셰프가 저지르는 유일한 실수’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성공 비결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셰프는 주방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일반 기업에 비교하면 부장, 차장 등 관리직이죠. 단순히 요리만 잘해서는 셰프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전에 요리사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재능이 관리자로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셰프로서 성공하면 할수록 장점을 빼앗긴다. 주방에서 가장 빠르고 부지런한 요리사였는데 갑자기 요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루 종일 해야 한다.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가다듬었다고 생각했는데 졸지에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아제는 전혀 다른 일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