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란 자꾸 나아가는 것이다/정신의 본질은 자유에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공평과 평등 나와 너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유영모)
‘가리다/이 거친 길 나도 걸어가리다/님 걸으신 자취 보면야 이 길 사양하리까?/나 위해 피흘린 길에 내가 눈물 안 지으리까?/푸른 하늘 보랬지/님이 그랬지/보리다 올려보리다/님이야 굽어보소서/가신길 걷다가 곤한 나/이 나 길 열어주소서’(함석헌)
낙엽이 지고, 잔가지마저 다 부러지고 나면 천년 고목엔 옹근 골갱이만이 남는다. 진실한 수도자의 정신이 그렇다. 유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89)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영성가다. 오산학교에서 교사 유영모를 학생으로 만났던 함석헌은 평생 유영모를 스승으로 모셨다. 또한 함석헌은 책상물림에 머물지않고,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선 선지자이기도 하다. 그 영성가와 선지자들의 정신은 시에 올곧이 담겨 있다.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두 선지자의 맥을 잇는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가 유영모와 함석헌의 시를 붓으로 썼다. 김 교수가 골라 뽑아 쓴 유영모의 시 14수가 함석헌의 시 14수가 28일부터 6월 12일까지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대전NGO지원센터’에서 열린다.
김조년의 붓글씨전 ‘붓끝에서 노니는 두 사상가, 유영모·함석헌의 시 세계’다.김 명예교수는 지난 3월 13일 유영모·함석헌 두 사상가의 생신일에 맞추어 두 분의 시를 붓으로 써서 전시하려고 준비해 왔으나,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미루었다가 코로나19가 조금 진정세에 접어들자 전시회를 열었다.
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엔 함석헌의 시만으로 붓글씨전을 연 적이 있다.“두 분의 시 형식으로 보면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인다. 속 알맹이로 보면 같은 느낌이다. 둘 다 사상시요 종교시며 생활시다. 어느 누구의 시나 글이나 한 줄 한 말 속에 그의 철학과 믿음체계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두 분의 것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무엇 한 가지를 말하나 자연과 우주와 인생과 종교와 역사와 사회와 지금과 영원히 하나로 뭉쳐서 나온다.
한 분의 시는 짧고 단촐하다. 한 분의 시는 가끔 길고 복잡하기도 하다. 짧은 시를 읽을 때는 모든 것의 알짬을 날카로운 칼 끝으로 콕 찌르는 듯한 아픈 깨달음을 주고, 긴 시를 만날 때는 홍수가 져서 범람하는 장강의 도도한 흐름을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김 명예교수는 “그 시들을 깊이 음미해보면, 아,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고, 역사와 사회는 이렇게 흐르는 것이로구나를 깨닫게 된다”며 “역병으로 불안한 이 때에 어떤 위로와 격려와 희망과 새로운 길을 찾을 건덕지가 여기 있구나 하는 느낌을 함께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시절 함석헌을 만나 평생 함석헌을 따르며,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씨알의소리 편집장을 지낸바 있는 김 명예교수는 표주박통신을 통해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삶을 널리 전하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따로 서예를 배워 본적이 없지만, ‘글씨는 제 글씨를 써야한다’던 함석헌의 말에 따라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썼다고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등록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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