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는 건강 포털 ‘코메디닷컴’과 함께 의료계 각 진료 분야의 대표적 명의들의 삶을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 양사는 전국 10여 개 대학병원 교수들을 대상으로 “가족이 당신의 전공 분야 병에 걸리면 어느 의사에게 보내고 싶은가”를 물었다. 이 결과를 집계하고 코메디닷컴이 2007~2013년 전문가와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평가점수를 일부 반영해 ‘베스트 닥터’를 선정했다.
첫 회는 폐암, 폐결핵,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 질환의 내과 치료분야. 전국 13개 병원에서 호흡기질환을 전공하는 교수 4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권오정 교수가 ‘베스트 닥터’로 선정됐다.
서울아산병원에선 고윤석·이상도·심태선·김동순·오연목 교수 등 많은 교수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정(56) 교수는 폐암을 치료하는 동료 교수 5명과 함께 2012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았다. 삼성그룹 전체에서 의사가 이 상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권 교수는 폐암의 조기 발견과 결핵 치료에서 국내 최고로 꼽힌다.
그는 1999년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폐암을 조기 진단하는 방법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당시 일부 의사는 “X선과 가래 검사로 진단이 가능한데, 쓸데없이 과잉 진단을 한다”고 수군덕거렸다. CT 검사는 방사선에 노출돼 오히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데다 암이 아닌데도 암진단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의료기관이 저선량 CT로 폐암을 조기 발견하고 있었으며, 권 교수는 영상의학과 이경수 교수와 함께 고민 끝에 이 진료방법을 도입했다. 그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선량 CT 검사로 수술이 가능한 조기 진단율이 몇 년 만에 20%에서 30~40%까지 올라갔던 것. 수술이 가능한 환자가 늘자 이 병원 흉부외과의 수술 성공률도 덩달아 올라갔다. 지난해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저선량 CT 검사의 장점을 공인했다.
권오정의 결핵 이야기 웹툰
◆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정 교수는 누구인가
◆ [권오정 교수에게 묻다] 자주하는 질문 Q&A
권 교수는 현재 폐암 중 담배를 잘 안 피우는 여성에게서 생기는 선암을 전 단계에서 저선량 CT로 빨리 발견해 제거하는 치료법을 보급하고 있다. 대장암 환자가 내시경으로 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용종을 떼어내듯 폐암 환자도 미리 치유하는 시대를 열고 있는 것.
권 교수는 폐암뿐 아니라 난치성 결핵의 치료에서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다.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다제내성결핵의 치료율은 83%로 외국 유명 병원의 60%대보다 훨씬 높다.
그는 또 재작년 결핵의 사촌 격인 ‘비결핵성 항산균’ 중 마이코 박테리움 압세수스라는 세균에서 특정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밝히는 등 비결핵성 항산균의 연구와 치료에서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권 교수는 지금까지 358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절반 이상이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에 게재됐다.
그의 장점은 환자뿐 아니라 동료 의사나 제자들에게도 늘 친절하다는 것이다. 후배와 제자 의사들은 권 교수가 환자들을 대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를 ‘권오정 어록’이라고 메모하면서 배운다.
주위 의사들은 권 교수에게서 그가 아버지처럼 모셨던 스승, 고(故) 한용철 박사의 체취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는 스승의 뜻에 따라 허허벌판이었던 서울 강남구 일원동 병원 터로 향했다. 병원 건설현장에서 임원에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영국 왕립 브롬톤 병원으로 향했다. 스승은 심장과 폐 분야의 세계적 병원에서 ‘최고의 수준’을 몸에 익혀오라고 요구했다.
권 교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연구실에서 잤다. 토, 일요일에도 실험실을 지켰다. 사람의 기도 조직을 얻기 위해 흉부외과 의사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는 2년 반 동안 주저 논문 4편을 비롯해 17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고 ‘특급 연구자’가 돼 귀국할 수 있었다.
권 교수는 호흡기내과 과장, 진료의뢰센터장, 적정진료운영실장, 기획실장 등을 거치며 삼성서울병원이 세계적 병원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성균관대 의대 학장으로 연구와 교육 수준을 올리는 데도 힘을 보탰다.
권 교수는 인문학적 소양이 몸에 밴 의사이기도 하다. 매일 신문을 보고 출근하며 책장에는 인문학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장모는 고(故) 박완서 작가이고, 형은 권오곤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상임재판관이다. 권 교수는 대학 시절 의대 연극반 활동이 자신이 ‘이과 범생이’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폐암의 희생을 줄이려면 금연이 첫째, 조기 진단이 둘째라고 말한다. 특히 55세 이상, 30갑/년(30년 동안 하루 1갑, 15년 동안 하루 2갑 등) 이상 담배를 피웠다면 매년 저선량 CT를 통해 조기에 병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권 교수는 “결핵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BCG(결핵) 예방 접종을 했어도 과로나 무리한 다이어트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결핵에 걸리므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면서 “감기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밤에 식은땀이 나고 쉬 피로하며 몸무게가 감소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