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음’ 조은희 방장, 박성배 수석연구원
궁중·반가 반찬 연구한 『찬』 출간
제철 재료 활용하고 아이디어 가미
맛 본 손님 호응 높은 77가지 소개
맛에도 음양오행이 있어 계절 감안
여름엔 쓴 것, 가을엔 매운 것 고려
인문학 공부하며 음식에 철학 담아
‘옛것을 바탕으로 바르고 온전하게 지금을 짓는다’는 뜻을 담고 2013년 문을 연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에는 공방이 셋 있다. 한복을 짓는 옷공방, 한식을 짓는 맛공방, 한옥을 짓는 집공방이다. 그중 맛공방에서 『찬(Chan)』을 최근 출간했다.『온지음이 차리는 맛』(2016)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반가 음식에 뿌리를 두고 재료 본연의 맛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는 여러 가지 반찬에 대한 연구를 담았다”는 것이 홍정현 온지음 기획위원의 설명이다. 패스트푸드로 한 끼 때우는 식사에 너나없이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제대로 된 ‘찬’은 어떤 것일까.
오이 뱃두리, 토마토 김치 등 별미
오이 뱃두리, 토마토 김치 등 별미
맛공방을 이끄는 조은희(48) 방장은 “궁궐과 양반가에 전해지는 음식 중 재철 재료를 활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로 골랐다”고 말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로서 반가 음식까지 오래 연구한 내공을 듬뿍 담았다는 얘기다. 신라호텔 한식당 서라벌 출신으로 일식 요리사인 박성배(38) 수석연구원은 “온지음 맛공방이 예약 손님들에게 올리는 식사 메뉴 중 ‘감동받았다’고 칭찬받은 반찬들”이라고 덧붙였다.
책에 소개된 77점의 반찬은 하나같이 먹음직스럽고 또 멋스럽다. ‘더덕 핫소스 무침’이나 ‘토마토 김치’처럼 식재료를 색다르게 조합하고, 흔한 ‘꽃게장’이 아닌 ‘단새우장’처럼 원재료를 슬쩍 교체하는가 하면, ‘천리장’처럼 옛 조리서에 글로만 존재했던 ‘만능 소스’를 재현해내기도 했다.
‘오이 뱃두리’라는 이름이 있어서 “뱃두리가 뭐냐”고 물었더니 “양념과 꿀을 넣어두는 항아리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오이를 간장과 꿀로 조려 독특한 식감을 낸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표정이 궁금해보였는지 성큼 재료를 내왔다. 오이와 양념한 쇠고기 육회가 전부다. 그런데 오이가 남다르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길지 않고 어른 손 한 뼘이 채 안될 정도로 작고 앙증맞다. “요맘때 나오는 피클 오이인데, 재래시장에 가면 팔아요. 씨가 작아 먹기에 좋죠.”(조은희)
적당히 자른 오이에 칼집을 내고 1시간 정도 절인 뒤 칼집 사이에 육회를 집어넣으면 준비 끝. 프라이팬에 간장 양념을 넣고 끓이다가 걸쭉해지면 오이를 넣고 자작자작 조린다. 먹어보니 아삭한 오이와 함께 씹히는 따뜻한 쇠고기의 감칠 맛이 밥반찬으로 또 안주로도 그만이다. “오이가 많이 나오는 여름에 즐기는 별미죠. 오이 감정이라고 고추장 넣고 찌개로 먹어도 맛있어요.”(박성배)
책에 소개된 77점의 반찬은 하나같이 먹음직스럽고 또 멋스럽다. ‘더덕 핫소스 무침’이나 ‘토마토 김치’처럼 식재료를 색다르게 조합하고, 흔한 ‘꽃게장’이 아닌 ‘단새우장’처럼 원재료를 슬쩍 교체하는가 하면, ‘천리장’처럼 옛 조리서에 글로만 존재했던 ‘만능 소스’를 재현해내기도 했다.
‘오이 뱃두리’라는 이름이 있어서 “뱃두리가 뭐냐”고 물었더니 “양념과 꿀을 넣어두는 항아리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오이를 간장과 꿀로 조려 독특한 식감을 낸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표정이 궁금해보였는지 성큼 재료를 내왔다. 오이와 양념한 쇠고기 육회가 전부다. 그런데 오이가 남다르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길지 않고 어른 손 한 뼘이 채 안될 정도로 작고 앙증맞다. “요맘때 나오는 피클 오이인데, 재래시장에 가면 팔아요. 씨가 작아 먹기에 좋죠.”(조은희)
적당히 자른 오이에 칼집을 내고 1시간 정도 절인 뒤 칼집 사이에 육회를 집어넣으면 준비 끝. 프라이팬에 간장 양념을 넣고 끓이다가 걸쭉해지면 오이를 넣고 자작자작 조린다. 먹어보니 아삭한 오이와 함께 씹히는 따뜻한 쇠고기의 감칠 맛이 밥반찬으로 또 안주로도 그만이다. “오이가 많이 나오는 여름에 즐기는 별미죠. 오이 감정이라고 고추장 넣고 찌개로 먹어도 맛있어요.”(박성배)
- 질의 :제철 재료를 적극 활용하네요.
- 응답 :“우리 음식엔 계절이, 24절기가 있어요. 반가에서는 2주마다 철에 맞는 재료로 바꿨다고 합니다. 꽃피는 봄이면 진달래 화전을, 가을에는 향이 좋은 들기름에 갓 뽑은 무를 볶아 먹었죠. 사실 제철 재료는 양념이 들어가지 않어도 맛있잖아요. 노량진시장이나 경동시장으로 좋은 제철 식재료를 찾으러 다니죠.”(조)
- 질의 :궁중 음식과 반가 음식을 오래 연구하셨죠. 어떤 특징이 있나요.
- 응답 :“전국에서 진상된 가장 좋은 식재료를 수십 년 요리한 숙수와 상궁의 솜씨로 만든 것이 궁중 음식이죠. 그런데 궁중과 양반가는 서로 교류가 잦았어요. 반가에서 궁궐로 시집가면 그 가문의 음식이 궐에 전해지는 것이죠. 궁궐 잔치에 초대받아 먹어본 음식을 집에 와서 다시 만들어 먹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국 식문화의 정수가 형성된 것입니다.”(조)
- 질의 :반찬을 만들며 에피소드도 많을 텐데.
- 응답 :“도루묵 구이를 하려는데, 우연히 알이 좀 덜 밴 생선을 사게 됐어요. 그런데 먹어보니 알이 통통한 것보다 더 맛있더라고요.”(박)
- 질의 :요즘 음식이 달고 짜고 맵고, 너무 자극적인 것 같습니다.
- 응답 :“저희는 맵고 짜지 않아도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매운맛이 필요하면 겨자를 더 넣거나 청양고추를 조금 잘라 넣으면 되죠.”(박)
- 질의 :‘공방’이라는 명칭이 재미있습니다. 셰프가 아니라 연구원이라 부르는 것도요. 특히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요.
- 응답 :“전문가 이전에 기술자가 돼야 하는데, 기술자는 스킬을 먼저 완전하게 익혀야죠. 그 다음엔 인문학적 인풋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음식에 대한 철학이 나올 수 있죠. 저희는 음식을 과하지 않게 또 부족하지도 않게 만들려 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랄까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죠.”(박)
- 질의 :인문학 공부는 어떻게 합니까.
- 응답 :“한 달에 두 번 정도 각계의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합니다. 최근에는 연세대 경영대 신동엽 교수님께 ‘리더십과 비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도자사’ ‘조선시대 양반사회’ ‘미술사’ 등도 공부했죠. 맛공방 13명에 옷공방과 집공방까지 총 23명의 연구원이 참석합니다. 중간 중간 특별한 분을 모시는 특강도 있고, 1년에 한 번은 다 같이 해외답사도 나가죠. 얼마 전에는 중국의 건축가 왕슈(王澍)가 지은 건물들을 보고 왔어요. 장자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분으로 유명하죠. 물론 재야에 숨어있는 요리사 분들을 모시는 것도 빼먹지 않습니다.”(조)
여름엔 백자, 겨울엔 유기 주로 써
- 질의 :그래서 얻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 응답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기술보다 드시는 분의 입장을 더 생각하게 됐죠. 계절을 감안하고, 색깔을 맞추고, 음양오행이 있어서 봄엔 신 것, 여름엔 쓴 것, 가을엔 매운 것, 겨울엔 짠 것까지 고려하죠. 어떤 그릇에 담아내는지도 중요합니다. 여름엔 백자, 겨울엔 유기를 주로 썼던 것도 다 이유가 있죠.”(박)
- 질의 :책을 만들며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 응답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맛을 기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더라도 봄에 만든 거랑 겨울에 만든 거랑 맛이 다르거든요. 무는 가을에 맛있는데 여름에 써서 만든다면 같은 맛을 내기 위해 재료를 가감해야겠죠. 혀가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조)
“책을 보시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재료로 이렇게도 만들어 먹는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박)
- 질의 :그렇다면 본인에게 음식은 무엇입니까.
- 응답 :“교감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그 감정이 먹는 사람에게 전해지죠. 그런 면에서 연구원끼리 서로 소통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죠.”(조)
“저는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음식이 다 비슷비슷해지고 있는데, 이게 한식입니다, 이게 우리 음식입니다 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요. 저희는 ‘맛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래서 계속 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박)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