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50년 넘게 연구해온 이강수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장자의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삶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인간 본연의 순수성 회복을 강조한 장자처럼 살고 싶다는 그의 미소가 아기처럼 환하다. 강윤주 기자

“장자(莊子)가 말한 무위(無爲)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에요. 누가 시켜서, 혹은 사회가 정한 룰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걸 하라는 겁니다.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거죠.”


얼마 전 경기 부천 자택에서 만난 대한민국 1세대 노장사상 학자 이강수(79) 전 연세대 교수는 장자 철학의 핵심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50년간 장자(기원전 약 355~275)를 연구해 온, 학계가 공인한 장자 권위자다. 그는 제자 이권(한국항공대 강사ㆍ61)과 함께 3권 짜리 장자 번역본을 최근 완역했다.


2005년 제1권인 ‘내편(內篇ㆍ장자가 직접 쓴 것)’을 내고 13년 만에 제2권인 ‘외편(外篇)’과 제3권인 ‘잡편(雜篇)’을 마무리했다. 외편과 잡편은 장자의 후대 제자들이 쓴 것이다. 해설이 제각각이라, 이 전 교수는 장자 사상의 기본을 담아내는 데 공을 들였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조삼모사(朝三暮四), 호접몽(胡蝶夢) 등 장자가 설파한 가르침은 더없이 익숙하다. 장자 관련 번역서도 수백 권이 나와 있다. 다만 작가에 따라 해석도 다르고, 강조하는 지점도 달라 얼마간의 혼선이 있었다. 이 전 교수는 “장자는 문장이 어렵고 해석도 쉽지 않아 중국에서도 이론이 엇갈린다”며 “장자의 생각을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의 이번 저작이 ‘장자 연구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유다.


번역 과정에서 이 전 교수는 50년 만에 대학 강의 노트를 다시 꺼냈다. 고려대 철학과 시절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ㆍ도와 진리는 말로써 한정할 수 없다는 뜻)’란 말에 이끌려 노장사상에 매료된 이 교수는 1969년 국립 타이완대 대학원에 입학해 장자 연구에 투신했다. 당시엔 중국에 사회주의 정권을 피해 싱가포르나 대만으로 옮긴 중국 대학자들이 많았다. 장자 연구로 가장 이름 난 왕숙민(王叔岷) 싱가포르 남양대 교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 전 교수는 타이완대에서 왕숙민의 직계 제자로부터 강의를 들으며 왕숙민의 연구와 학설을 전수 받았다. 2005년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이후 2012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장자 연구는 손에서 놓은 적 없다.

장자의 총명함을 듣고 초나라 위왕이 재상으로 삼고자 했으나 장자는 이를 사양하고 전원에서 자유롭게 사는 길을 택했다. 그의 부인이 죽었을 때 질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건 유명한 일화. 그는 생사 문제까지 포함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모든 인위(人爲)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 제공

장자 사상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이 전 교수는 ‘비판 정신’을 꼽았다. 장자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일체의 인위(人爲)에 반대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대표되는 전통적 사회 규범, 이념과 제도, 권력, 제물, 향락, 명예, 인간 내면의 허위의식까지 장자는 이 모두를 인간을 억압하는 것으로 보고 거부했다. 이는 곧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절대 자유의 경지인 ‘초연(超然)정신’으로 이어진다. 

 

장자가 초야에 파묻혀 유유자적 떠도는 ‘한량의 삶’만 권한 것은 아니다. 장자는 모두가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이상을 꿈꿨고, 이를 위해 다른 어떤 사상가들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 조언을 내놨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 장자는 나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오만일 뿐 아니라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봤다. 사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인간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장자는 꼬집었다. 이 전 교수는 장자가 말한 ‘물오리와 학의 다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인간들은 ‘물오리 다리는 짧고, 학의 다리는 길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물오리나 학에겐 다리가 길고 짧은 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최적의 생존 조건에 맞춰 다리가 길거나 짧은 것일 뿐이니까요.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 물오리 다리를 쭉 늘이고 학의 다리를 잘라 버린다면, 그들은 제 생을 다 살 수 없을 겁니다.”


모든 억압을 거부하는 장자에겐 다스리는 통치 행위 자체도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목수가 나무를 다스리면 나무는 부러지거나 꺾이기 마련. 아무리 성인(聖人)이라도 자기의 뜻을 고집해 천하의 사람을 다스리려 하면 백성을 해치게 된다고 장자는 경고했다. 이 전 교수는 “다스리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백성들의 입장에서 백성의 문제를 논해야 한다는 게 장자가 말하는 통치의 원리였다”고 강조했다.

장자(전 3권)
이강수 이권 지음
길 발행•562쪽•3만5,000원 
 

‘하고 싶은 대로 각자 사는 삶’이 시대 정신인 요즘, 그래도 어떤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쁜 욕망을 추구하는 것도 ‘자기 의지’라고 강변하면 어쩌나. 인간의 본성을 회복라는 게 옛 현인들 말씀인데, 어떻게 하면 될까. 이 전 교수는 “적자심(赤子心)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태어난 지 석 달도 안된 핏덩이 같은 아기(적자)를 떠올려 보세요. 물질이나 어떤 시류에도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가 인간의 본성입니다. 세상에 물들기 전의 마음 말입니다.”

두 시간 가까이 이 전 교수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지금 세상은 장자가 말한 대로 사는 게 몹시 어려운 곳이에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나 오염됐고 사회도 많이 혼탁해졌죠. 그럼에도 한 번쯤은 순수했던 인간의 본성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입력 201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