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법칙 데이비드 데스테노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360쪽 | 1만6000원
"‘지금 이 시점에서’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막 길을 건너려는데, 멀리서 자동차가 달려오고 있다. 법적으로 자동차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과연 어떤 차가 당신을 위해 속도를 늦춰줄까?
마티즈라면 안심하고 길을 건너라. 하지만 페라리라면 일단 멈춰라. 실제로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 실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즉, 비싼 차일수록) 법규를 더 무시했다. 다섯 단계로 나눈 계층 피라미드에서 맨 아래에 있는 운전자들은 100% 차량을 멈췄지만, 맨 위에 있는 운전자들은 50%가 속도를 더 높여 보행자를 지나쳤다.
"돈(권력)맛을 보더니 사람이 변했어." 정말 그럴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실험의 따르면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낱말 게임을 시키고 자기 성적만큼 돈을 가져가게 했는데, 이때 한 그룹만 게임에 앞서 돈다발을 지나치게 했다. 그 결과 돈을 본 집단은 더 많이 자기 성적을 부풀려 이익을 챙겼다.
이처럼 여러 실험에서 권력과 부를 잠시라도 맛본 사람들은 쉽게 신뢰를 저버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악해진 걸까? 아니면 원래 악했던 걸까?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데스테노 노스이스턴 대학 교수는 ‘신뢰성’이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며, 일관되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흔히 신뢰성은 안정적인 성격적 요소로 정의하지만, 인간의 도덕성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두 가지 충동에 이끌린다. 하나는 당장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 개선을 이루고자 하는 충동이다. 가령, 부와 권력은 신뢰에 대한 계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사람들이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신뢰성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장기적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도 단기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인간은 그렇게 한다.
따라서 신뢰를 가늠하는 방식으로 흔히 사용하는 ‘평판’은 환상에 불과하다. 평판은 과거의 것일 뿐, 미래에도 그 사람이 평판대로 움직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성실한 야구선수가 불법 도박에 손을 대거나, 신사다운 이미지의 정치인이 위력을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하는 등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사람들은 타인을 신뢰하고, 자신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려고 애 쓴다. 신뢰야말로 혼자서 얻기 힘든 자원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남을 더 쉽게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의 협력과 선의가 아니고서는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부와 권력을 얻으면 사람이 변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그렇게 해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어쩌면 그래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김은영 기자 입력 2019.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