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동안 한국사회 핵심 집단은 氏族

해암도 2018. 11. 21. 11:38

스위스 출신의 한국사 연구자 마르티나 도이힐러

"4~5세기 신라 때부터 19세기 말까지 한국 사회의 핵심을 이룬 기본 단위는 '씨족(氏族)'이었습니다."

대표적 한국사 연구자인 스위스 출신의 마르티나 도이힐러(Deuchler·83·사진) 런던대 명예교수가 한국에 왔다. 2015년 미국에서 낸 연구서 '조상의 눈 아래에서(Under the Ancestors' Eyes)'의 한국 번역본(너머북스) 출간에 맞춰서다. 20일 간담회에서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처럼 토착적인 친족 이데올로기가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나라는 없었다"고 말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명예교수
/장련성 객원기자
도이힐러 교수는 1000쪽 가까운 책에 지난 50년 동안의 한국사 연구를 집대성했다. 안동과 남원의 고문서·문집·족보·읍지 등 방대한 문중 자료를 섭렵하며 연구한 결과는, '씨족'이나 '족(族)' '겨레'라고도 하는 한국 고유의 출계 집단(出系集團·descent group)이 출생을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 집단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신라의 골품제도에서 비롯된 이 제도의 생명력은 강하고 길었다. "그것은 같은 조상에게서 본인의 혈통을 추적하는 친족 집합체였습니다. 성(姓)과 본관의 결합은 엘리트층의 이름표 구실을 했지요. 그 집단이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조상 숭배, 즉 '제사'에 있었습니다."

이 집단이야말로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고, 나아가 한국 역사에서 사회적 요소가 늘 정치적 요소에 우선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학계의 통설처럼 '새로운 호족 세력'이 나타나 고려를 세우고 '신흥 사대부'가 발흥해 조선의 중심 세력이 됐던 게 아니라, 씨족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계속 엘리트 역할을 했음을 뜻한다. 그는 이 엘리트 집단이 인구의 10~12%를 차지했고, 조선 초 40%에 달했던 노비 집단의 노동력에 의존했다고 본다.

그는 한국 역사가 1500년 동안 정체 상태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도이힐러 교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라며 "경제 등 각 방면으로 발전을 거듭했지만, 사회 저변에 깔린 장기 지속(長期持續) 요소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친족 이데올 로기가 21세기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도 '엘리트 집단'이 '노비 집단'과 혼인하려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2013년 '한국의 유교화 과정' 출간 때 '한국의 부계(父系) 중심 사회는 부계·모계를 모두 중시하는 양계(兩系) 사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듯, 이 이데올로기 역시 변화 과정에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입력 2018.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