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순철 사진전 'Don't Move' 고은사진미술관
동양서 온 낯선 남자가 뉴욕에서 낯선 사람에게
'움직이지 마'라고 외치고 사진을 찍었다
누가 그랬다 "사람들 앞에서 메두사로 변한다"라고
» 변순철 뉴욕 1998
변순철 작가의 개인전 ‘돈 무브’(Don‘t Move)가 부산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1월 21일까지. 이 전시는 고은사진미술관의 연례기획전으로 미술관 쪽에서 2013년부터 한해 한 명씩 40대의 사진가를 기회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 10월 13일(토) 오후 2시부터 변순철 작가와 송길영 박사(Mind Minder)가 진행하는 “세상을 다른 매질로 바라보는 두 사람의 이야기:Don’t Move-포착하다, 응시하다”라는 제목의 뮤지엄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추석연휴인 9월 22일부터 9월 26일까지는 휴관이라고 미술관에서 알려왔다.
이번 전시에는 변순철 작가의 초기 흑백 작업인 ‘뉴욕’이 50 여점 걸리고 컬러 작업 ‘짝-패’가 8점 걸린다. 20일 변순철 작가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제목부터 궁금하다. ‘돈 무브’란 것은 움직이지 말라는 뜻인데?
“내가 직접 지은 제목이다. 원래는 한글제목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결국 영어로 하게 되었다. 이게 뭐냐면 내가 처음 뉴욕에 갔을 때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을 사진 찍고 싶어서 ‘플리즈 돈 무브’라는 말을 많이 건넸다. 말 그대로의 뜻이야 1차적인 것이고 또 있다. 나의 작가 초기 시절엔 개인적인 자아에 관심이 많았다. 워커 에반스가 무표정한 사진을 끌어내듯 극단적 제스처나 감정의 표현이 없지만 묘한 느낌의 미장센이 만들어지는 중의적인 뜻의 대사다. 무표정을 함축적으로 끌어낸다. 영어를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돈 무브’는 초등학생도 아는 영어라서 그냥 제목으로 삼았다. 미국 선생들에게 물어보니 굳이 ‘플리즈’를 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했다. ‘돈 무브’가 일반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위압적인 느낌으로 들리진 않는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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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 작가는 질문을 하나 던지면 수십 마디를 답하는 스타일이다.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 다음 이야기를 스스로 준비하여 답하기 때문에 중간에 자르지 않으면 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잠깐만”하고 끊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돈 무브’라는 말을 언제부터 몇 명한테 했을까?
“96년에 유학 갔는데 97년부터 본격적으로 ‘돈 무브’를 외치고 다녔다. 유학 초기엔 관념적인 것에 빠져있다가 97년부터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시각 자기반성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오는 11월에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실향민을 찍은 신작을 전시하게 되었다. 가상과 현실인데….”
-잠깐. 몇 명한테 ‘돈 무브’를 했는지?
“돈 무브는 인간에 몰입한 시기였다. 나에겐 뭐랄까 나의 시작점이자 ‘변순철’을 볼 수 있는 근원이다. 한국에선 아직 공개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흑백이다. 그 (돈 무브) 흑백 사진들은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떤 사람이 사진적으로 순수했던 시기의 작업이다. 초심이 살아있던, 인간몰입이 과할 정도의 작업이다. 지금은 순수하지 않느냐고? 하하 지금은 사진과 인생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 땐 몰랐다. 호기심이 많았던 시절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때 작업에 애정이 더 간다. 아……. 한 5천 번 넘었다. 5천 명이 넘는다. 이번 전시의 ‘돈 무브’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97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에서만 찍었다.”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 ‘돈 무브’를 외쳤는가?
“음. 작가 대화 시간에 어떤 여자 작가가 그런 질문을 하더라. ‘인물에 관심이 많으시던데…….’ 나는 대상을 정할 때 어떤 판단을 하지 않았다. 다이안 아버스 자신은 부르주아였고 아쉬움이 없었지만 어떤 판단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다이안 아버스가 늘 찍는 기형아, 서커스 단원, 나체주의자 같은) 그런 사람을 찍었다. 나도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 스스로 20대 동양에서 온 아웃사이더였고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했다. 인간에게 들어가려고 거리나 가게에서, 밤에도 핸드플래시를 치면서 다가갔다. 하다 보니…. 미국은 큰 틀에서 보면 백인위주의 사회인데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사회다. 주로 청소년, 어린이, 노약자, 동성애, 이런 제3세계를 찍더라.”
변순철은 4년 전인 2014년에 ‘전국노래자랑’사진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면서 내게 “사람 얼굴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이언 아버스,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을 재발견하면서 이걸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물사진이란 것이 아버스나 잔더 같은 일부 ‘천재들의 놀이터’가 아님을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다이안 아버스의 영향을 받았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계속 하시라.
“‘전국노래자랑’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특별해지는 경우였다. 반면에 미국 뉴욕은 다르다. 경제활동이 떨어지는 계층을 통해서 판타지를 본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사진은 자기 이야기다 자기가 바라보는 현실에 투영한다. 전국노래자랑은 일상의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인데 ‘돈 무브’에선 그들은 겉에선 특별하다. 주변부란 뜻이다. 그런데 (그들을 사진으로 찍고 나니) 사진 속에선 나는 그들을 이웃으로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봤다. 그때 그거 준비하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이안 아버스와 유사하다고? ‘흑백’ (‘돈 무브’를 지칭한다. 변 작가는 계속 인터뷰를 통해 ‘돈 무브’를 ‘흑백’으로 불렀다.)에선 다이안 아버스를 언급할 수 있지만 ‘짝-패’는 좀 다르다. ‘짝-패’로 건너가면서 나의 세계다”
-사진을 보니 ‘뉴욕’ 외에도 ‘키즈 노스탤지어’란 제목을 단 사진이 있더라?
“아 그것도 큰 틀에서 ‘뉴욕’에 포함된다. 이번 전시는 원래 뉴욕 사진만 정리해서 ‘돈 무브’로 하려고 했는데 미술관 쪽의 요청에 따라 짝-패도 포함시켰다. 아이들 사진? 아아 그거 내가 뉴욕시대를 정리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있더라. 뭐냐면……. 어른들은 자의식을 숨기고 살 수 있는데 아이들은 숨길 수 없다. ‘내가 왜 아이들을 찍지?’ 뉴욕에선 나도 애가 아닌가…. 나의 자의식이 아이들의 자의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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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에서 예전에 전시를 한 저기 있으나 이번에 미공개작 4점이 큰 사이즈로 걸린다. 누군가 그랬다. ‘변순철의 짝-패때부터 한국 사진이 대형화되었다’라고. 물론 내용과 대형화가 서로 맞아야 하는 거지 무조건 크게 할 순 없다. 8X10 대형 카메라로 찍었다. ‘짝-패’는 친구보다 가까운 아주 밀접한 연인, 가족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도 나는 그들에 나를 투영시켰다. ‘나도 저렇게 혼혈커플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이다.”
-돈 무브! 라고 말할 때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그 중엔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 뉴욕에서……. 낯선 사람들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참 묘하게도 카메라를 든 나와 상대방이 서로 낯설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돈 무브’라고 불렀던 사람들 중에 95%는 카메라 앞에 서더라. 나를 특별하게 본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서울에서도 되더라. 길에 있는 낯선 사람을 찍는 것이. 내 앞에선 무장해제가 되는 것이다. 누가 그랬다. (사람들 앞에서) ‘변순철이 메두사가 된다’라고. 초기엔 영어도 잘 못했다. 한 번 찍은 사람을 추가로 촬영한 적도 있는데 그렇게 되니 친구를 소개해 주고 그랬다. 작업량이 길을 만든다. 11월 오라리오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는 제목을 저하고 있다. 누군가 또 나에게 그러더라 ‘어떻게 여러 시리즈를 점프하면서 그렇게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지….’ 아. 그리고 2014년에 발표한 ‘전국노래자랑’의 그 후 4년치도 준비되어있다. 11월 전시 다음번엔 전국노래자랑 신작을 발표할 것이다.”
-개를 찍은 사진도 있더라?
“걔에겐 ‘돈 무브’라고 하진 않았다. 이번에 사진집이 나왔다. 뒤표지로 그 사진을 썼다.”
인터뷰를 마쳤다. 변 작가와 모처럼 통화를 하게 되어서 그랬는지 할 말이 되게 많아 보였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엉뚱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동양에서 온 자그마한 남자가 갑자기 ‘돈 무브’라고 외치는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