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2시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738만원이다. 고점 대비 4분의 1토막이 났다. 그나마 광기의 ‘김치 프리미엄’(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이 없었던 해외 시세는 고점 대비 3분의 1토막 수준이다. 암호화폐 시가총액 300조원이 날아갔던 1분기보다는 나아지겠지 막연히 기대하지만, 2분기에도 가격은 지지부진하다.
가격과는 별개로 암호화폐 혹은 블록체인 업계 현장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매주 빠짐없이 밋업(암호화폐에 관심있는 이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열리고, 암호화폐 개발자들은 홍보를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는다. 지난 3~4일에는 ‘암호학의 아버지’ 데이비드 차움,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 등 업계 거물 80여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분산경제포럼’이 개최됐다.
9일에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오버스탁의 최고경영자(CEO)인 패트릭 번이 열기에 동참했다. 오버스탁은 2014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한 쇼핑몰이다.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모집, 이른바 ICO(Initial Coin Offering)를 선언했다. 오버스탁의 자회사 티제로는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 거래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월가에서 발행되는 모든 주식과 채권이 5년 안에 증권형 토큰으로 대체될 것이다.”
번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400여년 명맥을 이어왔던 주식회사, 혹은 주주 자본주의의 종언을 고한 셈이다. 그는 “2008년 경제 위기 때 주식거래 시스템의 결함으로 많은 문제가 생겼다”며 “밥 그레이펠드 전 나스닥 CEO가 말한 것처럼 향후 5년 이내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한 주식거래 시스템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회사 모델의 한계…우버는 컸는데, 운전자 삶은 그대로
자본주의의 근간은 주식회사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가 기원이다. 앞서 2년 전인 1600년 설립된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가 상인들이 돈을 출자해 만든 합자회사라면, 네덜란드는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동인도회사는 대항해 시대, 아시아와의 독점 무역을 위해 설립됐다. 폭풍우를 뚫고 해적을 피해 무사히 아시아까지 다녀와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다. 몇몇 상인들이 돈을 모아 배를 띄우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다.
동인도회사는 대항해 시대, 아시아와의 독점 무역을 위해 설립됐다. 폭풍우를 뚫고 해적을 피해 무사히 아시아까지 다녀와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다. 몇몇 상인들이 돈을 모아 배를 띄우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다.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 주식이다. 주식이라는 증표를 나눠주고 일반인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 배가 무사히 귀환하면 그 증표에 해당하는 만큼의 수익을 나눠 갖는다. 반대로 귀환에 실패하면 증표에 투자한 만큼의 돈만 날리면 된다. 초기에는 배에 투자한 사람의 명단을 배 아래에(Under) 이름을 새기는(Write) 식으로 표시했다. 여기에서 ‘주식ㆍ채권 등을 인수하다’라는 뜻의 ‘underwrite’라는 단어가 나왔다.
주주 자본주의는 산업화 시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공정한 답을 내놓기 어렵다. 단지 회사 설립 초기에 투자금을 댔다는 이유만으로 주주는 주인 대접을 받는다. 회사를 키우는데 실질적인 공을 세운 노동자는 그에 합당한 과실을 누리지 못한다. 회사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소비자들 또한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소외된다.
특히 최근 시장을 주름잡는 기업들은 사용자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페이스북ㆍ우버ㆍ에어비앤비 등의 현재 기업가치를 만든 건 콘텐츠를 생산하고, 운전을 하며, 집을 빌려준 이들이다.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이들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할 근거도, 이유도 없다.
한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사회주의 계열에서 내놓은 대안이 협동조합이다. 조합원들끼리 단체를 키우고 그 과실를 조합원이 나눠 갖는 방식이다.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효율성이 떨어졌고, 계약을 강제할만한 인센티브 시스템도 없었다.
그런데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도입됐다. 블록체인 전문 투자회사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지난달 열린 한 세미나에서 “블록체인을 통해 협동조합의 현대적 모델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를 예로 들었다. 김 대표는 “우버의 생태계 형성에 운전자들이 큰 몫을 했지만, 우버가 680억 달러의 가치로 성장한 반면 운전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며 “만약 우버가 우버토큰을 발행하고, 운전자에게 우버토큰으로 임금을 지불한다면 운전자들 역시 우버토큰을 통해 우버라는 기업의 성장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주식ㆍ채권, 5년 내 증권형 토큰으로 대체”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은 자체 블록체인을 보유한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에서 쓰이는 암호화폐가 비트코인(BTC)과 이더(ETH)로, 이를 코인이라고 부른다. 반면, 토큰은 이런 플랫폼 기반 위에 구축된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쓰이는 암호화폐다. ICO를 통해 투자자들이 받게 되는 암호화폐는 모두 토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토큰은 그 성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지난 2월 ICO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토큰의 성격을 3가지로 나눴다. 먼저, 지불형 토큰(payment token)이다.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이거나 송금 등에 활용된다. 암호화폐와 혼용돼 쓰인다. 자금의 이동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자금세탁방지법의 적용을 받는다. 둘째는, 유틸리티형 토큰(utility token)이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된다. 어떤 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산형 토큰(asset token)이 있다. 향후 기업 이익과 미래 현금흐름에 따라 배당을 받는 형태다. 다른 말로 증권형 토큰이다. 기존의 주식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최근 ICO의 대세다. 증권법(한국은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ICO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증권형 토큰 발행에 현재 기업공개(IPO)에 준하는 규칙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번은 자신을 ‘월가의 이단아(scourge)’로 소개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와이어드는 2014년 2월 그를 다룬 기사의 제목을 ‘패트릭 번을 만나다: 비트코인 메시아, 오버스탁 CEO, 월가의 이단아’라고 표현했다.
번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통한 ‘토큰 경제(token economy)’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소위 모든 자산의 토큰화(toknization)가 가능한 경제 시스템이다. 160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처음으로 시작된 주식회사 모델이 토큰 경제로 대체될 것으로 확신한다. 토큰 경제에서는 생태계 조성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토큰을 통해 각자의 몫을 챙길 수 있다.
번의 믿음의 근간에는 법정화폐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는 자칭 ‘정당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자’다. “건전한 통화 제도는 정부 관료의 변덕에 기초하는 모델이 아니라 관료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뿌리를 둬야 한다”는 게 번의 지론이다. 지난해 말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트코인과 금은 진짜 화폐”라는 밝혔다.
기존 경제시스템도 불만이다. 번은 2008년 이후 두 차례 소송을 거쳐 월가의 무차입 공매도와 전쟁을 벌였다. 그는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월가의 민낯을 소송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며 “2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3400만 달러를 썼는데 3500만 달러를 받아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토큰은 그 성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지난 2월 ICO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토큰의 성격을 3가지로 나눴다. 먼저, 지불형 토큰(payment token)이다.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이거나 송금 등에 활용된다. 암호화폐와 혼용돼 쓰인다. 자금의 이동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자금세탁방지법의 적용을 받는다. 둘째는, 유틸리티형 토큰(utility token)이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된다. 어떤 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산형 토큰(asset token)이 있다. 향후 기업 이익과 미래 현금흐름에 따라 배당을 받는 형태다. 다른 말로 증권형 토큰이다. 기존의 주식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최근 ICO의 대세다. 증권법(한국은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ICO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증권형 토큰 발행에 현재 기업공개(IPO)에 준하는 규칙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번은 자신을 ‘월가의 이단아(scourge)’로 소개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와이어드는 2014년 2월 그를 다룬 기사의 제목을 ‘패트릭 번을 만나다: 비트코인 메시아, 오버스탁 CEO, 월가의 이단아’라고 표현했다.
번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통한 ‘토큰 경제(token economy)’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소위 모든 자산의 토큰화(toknization)가 가능한 경제 시스템이다. 160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처음으로 시작된 주식회사 모델이 토큰 경제로 대체될 것으로 확신한다. 토큰 경제에서는 생태계 조성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토큰을 통해 각자의 몫을 챙길 수 있다.
번의 믿음의 근간에는 법정화폐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는 자칭 ‘정당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자’다. “건전한 통화 제도는 정부 관료의 변덕에 기초하는 모델이 아니라 관료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뿌리를 둬야 한다”는 게 번의 지론이다. 지난해 말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트코인과 금은 진짜 화폐”라는 밝혔다.
기존 경제시스템도 불만이다. 번은 2008년 이후 두 차례 소송을 거쳐 월가의 무차입 공매도와 전쟁을 벌였다. 그는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월가의 민낯을 소송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며 “2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3400만 달러를 썼는데 3500만 달러를 받아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토큰 경제를 향한 변화의 움직임은 월가 내부에서 감지된다.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퀀텀펀드는 지난해 4분기 1억 달러를 투자해 오버스탁의 3대 주주가 됐다. 최근엔 암호화폐에 직접 투자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석유왕 록펠러 가문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벤록도 암호화페ㆍ블록체인 시장에 진출했다.
다만, 변화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토큰 경제로의 이동에 기존 주주들이 “이익 침해”라며 반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이날 동석한 이더리움 ICO 구조를 설계한 스티븐 네라요프 티제로 고문이 답했다. 그는 “기존 상장기업들이 증권형 토큰으로 ICO를 한다고 해도 전체 회사 주식에 대한 토큰이 아니라 특정 프로젝트나 특정 사업부에 대해 발행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발행한 토큰을 가지고 기존 주식을 가진 주주들에게 일정 부분 보상한다든지, 필요한 규모로 기존 주식을 토큰으로 교환해 주는 방식 가운데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네라요프는 “400조 달러 규모의 주식시장보다는 작지만 200조 달러 규모의 부동산 시장이나 100조 달러 규모의 채권시장 역시 증권형 토큰 시장으로 편입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자산을 토큰화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변화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토큰 경제로의 이동에 기존 주주들이 “이익 침해”라며 반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이날 동석한 이더리움 ICO 구조를 설계한 스티븐 네라요프 티제로 고문이 답했다. 그는 “기존 상장기업들이 증권형 토큰으로 ICO를 한다고 해도 전체 회사 주식에 대한 토큰이 아니라 특정 프로젝트나 특정 사업부에 대해 발행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발행한 토큰을 가지고 기존 주식을 가진 주주들에게 일정 부분 보상한다든지, 필요한 규모로 기존 주식을 토큰으로 교환해 주는 방식 가운데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네라요프는 “400조 달러 규모의 주식시장보다는 작지만 200조 달러 규모의 부동산 시장이나 100조 달러 규모의 채권시장 역시 증권형 토큰 시장으로 편입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자산을 토큰화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