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와 고객, 같은 은행 계좌로만 입출금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 도입 등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한 투자자가 서울 여의도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 원 블록서 전광판에 표시된 암호화폐 시세를 바라보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8일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도입을 발표한 지 일주일. 아직까진 암호화폐 거래시장에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따르면 정부 규제로 신규 유입자금은 0으로 떨어졌지만 거래량은 특별히 줄지 않았다. 업비트 관계자는 “아직까진 정부 규제 영향보다는 암호화폐 시세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20일께 거래 실명제 시행되면
가상계좌로는 입출금 할 수 없어
기존 이용자 타행계좌 출금은 허용
입금 신청 땐 은행이 본인 확인
미성년자·외국인 투자는 차단
당국, 은행 통해 과세정보 파악 가능
시스템 부실한 중소 거래소 퇴출
정부의 특별대책 발표 직후 주춤했던 암호화폐 가격은 최근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과거 동전코인(1달러 미만 암호화폐)으로 불리던 리플 가격은 최근 일주일 동안 코인당 1700원에서 4670원으로 175% 급등했다. 최근 한달 사이 상승률은 1500%에 이른다. 다른 암호화폐 가격도 동반 상승세다. 지난해 12월 31일 1810만원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3일 급등하더니 2000만원대로 다시 올라섰다. 대책 발표 직후 90만원대로 떨어졌던 이더리움도 4일 한때 역대 최고 가격인 코인당 130만원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거래 실명제가 본격 적용되면 암호화폐 거래에 변화는 불가피하다. 은행권과 주요 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20일쯤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가 시행될 전망이다. 고객 입장에서 가장 달라지는 건 지금처럼 아무 계좌로나 입출금 거래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명확인 시스템에선 거래소와 고객이 동일 은행 계좌로만 입출금 거래를 하도록 제한한다. 만약 해당 거래소가 A 은행 계좌만 갖고 있으면 고객도 A 은행 계좌가 있어야 입출금이 가능하다.
이전부터 거래해온 고객이라도 실명 서비스가 도입된 뒤엔 거래소와 같은 은행 계좌가 없으면 추가 입금이 막힌다. 단, 기존 이용자엔 다른 은행 계좌로의 출금은 허용키로 했다. 이미 투자해놓은 돈을 마음대로 뺄 수 없으면 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는 보통 한두개 은행과 거래한다. 빗썸은 신한·농협은행, 업비트는 기업은행, 코인원은 농협은행을 이용한다. 금융당국은 거래소당 이용 은행 수를 제한하진 않을 방침이다. 이에 거래소들은 거래 은행을 늘리기 위해 은행과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거래소가 계좌를 튼 은행이 많을수록 고객들이 거래하기 편리해지기 때문이다. 빗썸 관계자는 “정부·은행과 협의를 거쳐 거래 은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입금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지금은 거래소가 고객 이름으로 된 가상계좌를 열어주면 그리로 송금하면 됐다. 앞으로는 가상계좌는 아예 쓰지 않는다. 고객은 가상계좌가 아니라 거래소 명의로 된 일반 은행 계좌로 입금을 하게 된다.
계좌번호와 명의가 달라진다는 점 말고는 고객 입장에선 특별히 불편할 건 없다. 대신 정부는 이렇게 함으로써 은행을 통한 암호화폐 거래 통제가 가능해진다.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고객이 암호화폐 거래소로 입금을 신청하면 은행은 고객의 이름과 계좌번호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까지 확인한다. 만 19세 미만인 미성년자,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은 아예 투자하지 못하도록 은행이 차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암호화폐 거래에 세금을 매길 근거자료를 은행이 확보한다. 지금은 암호화폐 거래로 수익을 올린 사람이 국세청에 이를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 한 소득세를 물리기 어렵다. 만약 소득세 부과를 강제하려면 지금은 거래소로부터 고객의 암호화폐거래내용을 입수해야 한다. 거래소에 이러한 관리 책임을 지우려면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해야 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런데 거래 실명제가 도입되면 정부는 거래소가 아닌 은행을 통해 개인별 암호화폐 거래 내용을 확인하면 된다. 이를 근거로 얼마든지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민간전문가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구체적 과세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거래 실명제뿐 아니라 불건전 암호화폐 거래소 선별 작업도 본격화된다. 앞서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스템을 전면 점검해 본인확인과 미성년자·비거주자 거래 금지, 해킹 방지 등이 미흡한 곳과는 거래를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은행이 지급결제서비스를 중단하면 그 거래소는 입출금이 막혀 사실상 폐쇄된다. 각 은행은 거래소 점검을 이미 시작했다. 3일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은행권 점검을 통해 시스템이 안 돼 있는 중소형 거래소를 퇴출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대책에도 투기 열풍이 가라앉지 않으면 1인당 거래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강영수 금융위 가상통화대응팀장은 “(암호화폐의) 개인 간 거래(P2P)까지 제한할 순 없지만 거래소 거래는 금융당국이 은행을 통해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블록체인의 암호화 기술을 활용한 화폐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전자장부 기록 방식으로 가치가 보장된다.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거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계좌에 암호화폐가 이동한 기록이 남는다. 법정화폐와 달리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이전에는 가상 화폐(virtual currency)로 불렸다. 한국 정부는 ‘가상통화’로 부른다. 전 세계에서 암호화폐라는 말로 통일되고 있다.
」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