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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목강심(閉目降心)

해암도 2016. 12. 19. 06:1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소동파가 '병중에 조탑원을 노닐다(病中遊祖塔院)'라는 시의 5·6구에서 "병 때문에 한가함 얻어 나쁘지만 않으니, 마음 편한 게 약이지 다른 처방 없다네(因病得閑殊不惡, 安心是藥更無方)"라고 했다. 몸 아픈 것은 안 좋지만 그로 인해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선종(禪宗)의 안심법문(安心法門)에서 나왔다. 혜가(慧可)가 달마(達磨)에게 물었다.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가라앉혀 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그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편안하게 해주마." 혜가가 궁리하다가 말했다. "찾아보았지만 못 찾겠습니다." "그럼 됐구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온다.

조선시대 이의태(李宜泰)는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 잇달아 상(喪)을 만나고 우환까지 겹치자 마음의 병을 얻어 고질이 되었다. 이른바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하루는 문득 선현의 가르침 중에 나오는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화기(火氣)를 다스리는 좋은 처방이다(閉目降心, 治火良劑)'란 여덟 글자가 떠올랐다.

그는 방문을 닫아걸고 단정히 앉아 8일간 폐목강심 공부를 실행했다. 심기가 차츰 화평해지더니 예전 증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종수(李宗洙)의 '근인당이공행장(近仁堂李公行狀)'에 나온다.

/조선일보 DB
생각의 길을 못 열면 답답함이 몸속에 화기로 쌓인다. 불은 위로 솟는다. 화기가 돌아 몸을 덥히지 못하고 위로만 뻗치면 정신을 태워 심신의 균형이 무너진다. 눈을 감으면 생각이 괴물로 변해 나를 덮칠 기세더니, 마음을 내려놓자 눈앞에서 차츰 잡생각이 사라진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실은 다 거짓이었다. 옳은 말씀은 자기에게만 예외였다. 성실한 노력과 진실의 진정성을 그들은 조롱하고 짓밟았다. 그간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은 걸까? 속지 않으려 눈을 똑바로 뜰수록 마술사의 손짓이 현란해진다.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내려놓을 때 그 안에 똬리를 튼 욕망의 실체가 보인다. 나라의 큰 병이 황폐해진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단전에 든 투명하고 찬 불덩어리가 덩실 떠오른 달처럼 지혜로 빛난다.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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