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
삼성전자, 4년 연속 톱10
삼성이 단기간에 브랜드 가치를
성장시킬 수 있있던 비결은
최고경영진이 브랜드에 대해
눈을 뜨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룹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약진은 더 놀랍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4년 연속 ‘글로벌 브랜드’ 톱10에 올랐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평가에서 460억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아 7위를 차지했다. 인터브랜드가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산정하기 시작한 2000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52억달러로 43위에 불과했다. 삼성전자 매출은 브랜드 전략을 정비하기 시작한 1996년 15조8745억원에서 지난해 135조2050억원으로 8.5배 성장했다. 1996년 연간 100만대 수준이던 휴대전화 판매는 지난해 4억대를 넘어섰다. 20년간 판매 대수가 400배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을 호령할 수 있었던 데엔 끊임없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제품들을 수시로 내놓고, 각 부문에서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 등 노력을 기울인 것이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 선발주자들의 뒤를 쫓으며 기술을 배우던 삼성전자는 TV와 반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술적인 면이나 디자인에서 모두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했다”며 “TV와 스마트폰이 글로벌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 소비자들 사이에서 ‘삼성 제품은 명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인터브랜드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 급성장에 대해 “일관된 브랜드 전략을 통해 중저가 제품을 파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고급 브랜드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또 지역에 상관없는 통일된 브랜드 전략,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하고 끊임없는 시도, 최고경영진을 비롯한 임직원의 브랜드 전략에 대한 이해 등이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최고경영진의 추진력이 원동력
삼성이 단기간에 브랜드 가치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최고경영진이 브랜드에 대해 눈을 뜨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브랜드 전략을 정비한 것은 1996년부터다. 1996년 8월 14일 서울 신라호텔. 이건희 회장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피선 축하연이 마련됐다. 사장단과 비서실 팀장급 등 삼성의 수뇌부 참석자들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하지만 이날 주인공이었던 이건희 회장의 표정은 고뇌에 차 있었다. 마침내 이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다가올 21세기는 브랜드가 경쟁의 핵심이 되는 소프트 경쟁 시대다. C급인 삼성 이미지를 A급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해외에서 삼성 이미지는 그저 ‘아는 회사’ 정도였다. 싸구려 가전제품이나 만드는 회사로 인식됐고, 제품이 잘 팔리면서부터는 일본 기업으로 알려졌다.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목표엔 모두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의치 않던 상황이었다. 제품을 내다팔면서 단발성 광고 판촉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해외법인이 각각 사용한 광고대행사만 55개에 달했다. 이 때문에 삼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공통된이미지를 연출하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 이후 삼성은 브랜드 전략을 전반적으로 정비했다. 글로벌 마케팅 조직(글로벌 마케팅실)을 신설하고, 선진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글로벌마케팅실(GMO)은 제품 마케팅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나 광고 전략 등 삼성전자 전체 마케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했다. 해외 법인별로 제각각 활용하던 광고대행사도 하나로 통합해 세계 소비자에게 동일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1997년부턴 올림픽과 인연을 맺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무선통신 분야 후원사로 참여했다. 이러한 올림픽 파트너십을 통해 휴대전화 등 첨단 무선기기에 강점을 가진 회사라는 것을 전 세계 소비자에게 인식시켰다. 올림픽 파트너십은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까지 예정돼 있다. 핵심 인재를 영입하고 관련 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1999년 S급 인재로 영입돼 5년간 해외마케팅을 담당한 김병국 전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재미동포로 유수의 미국 기업에서 기술제품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한 그를 스카우트했다. 김 부사장은 강력한 단일 브랜드 구축을 위해 200여개 국가에 100억달러를 투입해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또 55개 광고대행사를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2000년대 초에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기업 소개행사를 가져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에도 P&G, 나이키, 로레알, 피자헛, 존슨앤드존슨, 코카콜라 등으로부터 핵심인재를 영입했다.
2011년엔 TV의 파브, 에어컨의 하우젠 등 상품별 브랜드를 없애고 삼성 브랜드로 통합했다. 인터브랜드는 “삼성이라는 ‘마스터 브랜드’에 누적되는 자산을 늘리고, 삼성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각각 다른 이미지를 연상할 가능성을 줄였다”고 평가했다. 20만명이 넘는 국내 삼성 직원들이 일관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브랜드를 사용하도록하고 브랜드 전략의 중요성을 교육시킨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삼성의 브랜드 사용 가이드 라인에는 광고 등에서 삼성 브랜드가 언급되는 횟수와 삼성 로고의 크기 및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글로벌 일류 기업에는 못 미쳤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소니와 노키아 등이 몰락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시장의 절대강자로 우뚝 섰다. 스마트폰 선두주자였던 애플도 제쳤다. 삼성전자의 성장엔 세계 최고 기업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는 추격자 전략이 유효했던 것도 있지만 브랜드 전략도 성공에 한몫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을 추격하기 위해 빠른 의사결정 및 품질경영과 함께 소비자 친화적인 브랜드 마케팅이 성공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현지 밀착 마케팅 전략 주효
특히 글로벌마케팅실을 구심점으로 각 사업부별 특화 브랜드 전략을 내세워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는 브랜드 마케팅을 펼친 것이 맞아떨어졌다. 공략할 시장 진출에 앞서 현지 문화에 동화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도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삼성 브랜드에 대한 지역 간 편차가 심할 때 세계 곳곳에 고르게 확산해 초일류 브랜드로 성장시킨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4월부터
로고에서 타원형 마크를 빼고
문자만 쓰기도 한다.
최근엔 파란색 대신 검은색을 쓰는
등 로고 색상도 바뀌고 있다
삼성그룹은 2008년부터 브랜드관리위원회를 설치해 통일성 있는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계열사 간 마케팅 예산의 중복투자를 방지했다. 당시 브랜드관리위원회는 이순동 제일기획 사장, 김인 삼성SDS 사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 등 주요 계열사의 사장단으로 구성됐다. 계열사가 삼성 브랜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또 연간 1억달러 규모의 그룹 공동 브랜드 마케팅 펀드도 조성했다. 이러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브랜드 파워를 등에 업은 여타 계열사들은 다른 기업에 비해 시장의 신뢰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브랜드의 힘이 삼성 계열사들이 시장에 쉽게 진입해 안착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다.
최근 삼성의 브랜드 전략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 해 수억달러를 써온 글로벌마케팅실을 축소했다. 사장급 조직에서 부사장급 조직으로 줄였다. 장기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작업에 쓰던 돈을 필요한 곳에만 효율적으로 쓰도록 했다. 그동안 엄격하게 제한되던 타원형의 로고 사용도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현재 삼성이 쓰고 있는 CI(기업 이미지)는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개발됐다. 1990년대 들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이 해외에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일관되고 글로벌 감각을 갖춘 새로운 마크와 로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91년 삼성 비서실, 제일기획, 삼성경제연구소 등이 주축이 된 ‘그룹 CI 추진팀’이 발족됐다. 2년여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현재의 파란 바탕의 삼성 로고다.
삼성은 지난해 4월부터 로고에서 타원형 마크를 빼고 문자만 쓰기도 한다. 최근엔 파란색 대신 검은색을 쓰는 등 로고 색상도 바뀌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plus point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검정을 좋아하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청소년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다. 그동안 짙은 파란색이 경직된 느낌을 줘 혁신을 지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삼성은 CI나 광고간판 등을 모두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CI가 바뀐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로고 등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쓰는 것 같다”고 보고 있다.
체험형 매장 확대해 프리미엄 이미지 높여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마케팅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매장을 삼성전자만의 브랜드와 프리미엄폰 이미지를 반영한 체험형 매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장 직원 교육에서부터 제품 전시, 인테리어까지 삼성이라는 브랜드 정체성과 명품폰 이미지에 걸맞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체험공간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삼성전자의 다양한 IT 관련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들어보는 등 체험하게 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자연스럽게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객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을 통해 삼성만의 독창적인 매장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